한국정치의 가장 큰 고질병은 극한적 이념 갈등이다. 보수와 진보 어느 쪽에 속하든 상대를 부정하고 심지어 악마화 하려 한다. 정치의 목적은 국민을 편하고 이롭게 하려는 것인데 양측 모두 자기 정파만을 위한 투쟁에 몰입하고 있다.
현재의 이 나라의 여당은 보수, 야당은 진보를 표방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현재의 여야는 참된 보수도 진보 정당도 아니다. 여야는 진영정치에 몰입하여 자기편은 선이고 상대는 악이라는 양분 프레임정치를 하고 있다. 양식 있는 시민들이 우려하고 실망시키는 우리 정치의 모순이다.
이 나라 정치인뿐 아니라 언론까지 심지어 시민 단체나 개인들까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보수는 체제 안정과 유지를 위한 수단이고, 진보는 체제의 모순을 개선 개혁하려는 이념일 뿐이다. 그러나 한국 정치에서 보수도 진보도 본질에서는 많이 이탈하여 사이비 보수와 진보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이념대립은 결코 선악대립이 아니다.
달포 전 어느 스님의 산방을 찾은 적이 있다. 종교간 간헐적 대화 모임에 소생도 참여했던 것이다. 오찬 시작 전 초청 스님의 인사말씀이 있었다. 찾아와 주어 고맙다는 의례적인 인사는 아니었다. ‘회영(懷影)산방’이라는 옥호의 작명 내력부터 소개하였다. 인생을 오래 살다보니 남는 것은 자신을 따르는 그림자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이 그림자를 가슴에 품고(懷影) 살아가는 곳이 이 산방이란다.
노승은 젊은 시절 불교뿐 아니라 모순된 사회 개혁을 위해 열심히 뛰었다. 그는 평생을 현실 개혁을 위해 싸워왔지만 진보만이 선이 아니라는 점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진보에도 선인과 악인이 항상 공존했다는 것이다.
스님은 첩첩산중인 이 산방에서 조용히 살다 하직하겠다는 말씀도 하셨다. ‘햇살이 고루 퍼지는 오전 10시, 산속의 뻐꾸기 소리를 들으면서 춤을 추면서 이승을 떠나겠다’는 것이다. 초연한 스님 말씀에 모두가 숙연해진다. 상당히 가슴에 와 닿는 인사성격의 법문이었기 때문이다.
이 나라 정치에서 보수측과 진보측은 상호 비난하고 적대시한다. 여야 간 협치가 되지 않는 근원이다. 보수 강경 단체는 진보 단체를 수상한 집단으로 간주한다. 보수 우파는 진보 좌파를 용공이나 공산주의자로 매도하기도 한다.
1950년대 미국에서 상대 경쟁자를 공산주의자로 거부했던 매카시즘이 아직도 횡행하고 있다. 6·25 전쟁직전 보도 연맹사건으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 자유당 시절 대선후보였던 조봉암마저 사형이 집행되었으나 뒤늦게 무죄 판명되었다.
8·7 민중항쟁 이전 수많은 민주화 인사들이 용공이라는 명목으로 희생되었다. 보수측은 진보측을 아직도 반국가 세력이며 추출해야할 악의 세력으로 단죄하려 한다. 진보에 대한 의심과 불신 감정이 보수층의 심리적 기저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보수 강경인사들은 자기들은 항상 선이며 애국세력으로 자부한다. 보수 진보의 이념의 갈등이 선악의 프리즘으로 작동되는 증거이다. 진보측 역시 보수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이 강하다. 이들은 보수층을 기득권을 옹호하는 부패한 집단으로 간주한다. 해방 후 정당간의 실질적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보수는 ‘권위와 정통성’이라는 독점적 지위를 견지해 왔다.
진보측은 보수 측을 기득권 유지를 위한 부패한 세력으로 간주하였다. 진보측은 보수 측을 서민이나 소외된 자들을 돌보지 않고 가진 자의 편에 서 있어 역사를 퇴행시키는 ‘반역사적 세력’으로 간주하기도 하였다.
진보 측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불러온 촛불 집회를 옹호하면서도 보수 측의 태극기 집회는 거부할 수밖에 없다. 진보 측에서는 보수 강경파를 친미 사대주의자로 간주할뿐 아니라 때로는 힘 있는 곳에 기생하는 기회주의자라고 비판한다. 이 나라 보수가 과거 권위주의 독재정권까지 옹호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항상 이런 강자에 의존하는 기회주의적 속성이 사회정의를 파괴하고 역사를 퇴행시킨다는 것이다.
이 같은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한국의 정당 정치를 왜곡하고 극단적 거부 정치, 진영 정치를 부추길 뿐이다. 이런 정치판의 보·혁 갈등이 가족이나 친족, 동창 조직 등의 모임에서도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한국의 갈라진 언론이 이를 더욱 조장 확산시킨다. 보수는 영국의 에드먼트 버크에서 보듯이 전통과 기존질서를 옹호하려는 이념이다. 혁명이나 개혁으로 인한 대혼란을 막겠다는 입장이다. 진보는 지속적으로 개혁하고 혁명해야 공동체가 발전할 수 있다는 신념이다. 그런데 오늘의 한국 현실은 사이비 보수와 진보가 서로 비난하고 저주하면서 뒤엉켜 싸우고 있다. 정치적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 대립이 도덕적 선악갈등으로 비화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 정치학자 바라다트는 일찍이 보수도 진보도 자기의 뜻을 관철할 수 없는 허무주의에서 만난다고 주장하였다. 정치와 역사는 결국 양측의 정반합의 변증법을 따를 수밖에 없다. 보수와 진보를 중재할 사람은 결국 양식 있는 중도층이다. 이들이 선거에서 심판자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