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강골검사에서 대통령으로

박형남기자
등록일 2022-03-10 20:10 게재일 2022-03-11 4면
스크랩버튼
당선인 윤석열 누구<br/>사시 9수 끝에 늦깎이 검사 출발<br/>노무현 정부 시절 ‘칼잡이’ 명성<br/>조국 수사로 정부·여당과 갈등<br/>검찰총장 사퇴 1년 만에 靑 입성

전례없는 행보의 연속을 보여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제20대 대통령에 당선되며 한국 정치권 역사를 새로 썼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몸소 실천하며 적폐 청산에 앞장서 온 윤 당선인은 정당 및 진보 보수를 넘어서는 종횡무진 행보로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검찰 수장에서 0선 정치신인으로 나선 그는 단번에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를 거머쥐며 국정운영이라는 숙명을 받아들이게 됐다.

한국 정당사상 최초의 0선 정치 신인, 정치입문 4개월만에 대선후보가 된 최초의 인물…. 갖은 최초의 타이틀을 쥔 그는 대학교수였던 부부의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윤 당선인은 어린시절 경제학자를 꿈꾸는 등 학문에 재능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던 중 “더 구체적인 학문을 하라”는 부친의 당부에 따라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 대쪽 같은 신념은 학창시절부터 그 싹을 보였다. 윤 당선인이 5·18 민주화운동 직전 서울대 학생회관에서 열린 교내 모의재판에서 고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이 모의재판으로 인해 석달 동안 외가가 있던 강원도 강릉으로 피신해 있기도 했다.

유복했던 어린 시절부터 승승장구하기만 했을 것이라는 세간의 편견이 적지 않지만 윤 당선인은 검찰청 입성부터 검사생활까지 지난한 세월을 지나왔다. 윤 당선인은 대학 졸업 후 9수 만에 사법시험에 합격, 후배들보다 한참 늦은 늦깎이 검사가 됐다. 이렇다 할 이력이 없던 그는 노무현 정부 시절 굵직한 특수사건들에 투입되면서 ‘칼잡이’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2002년 검사를 그만두고 대형로펌서 변호사로 근무하다 1년만에 돌아온 것이 그의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됐다. “검찰청 짜장면 냄새가 그립다”는 이유로 검찰청에 돌아온 윤 당선인은 2003년 SK 분식회계 사건 및 불법 대선자금 사건을 비롯해 현대차그룹 비리 사건,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 삼성그룹 비자금 사건, BBK 특검, 부산저축은행 사건, 국정원 댓글 사건 등 대형 사건 수사를 도맡았다. 특유의 수사 스타일 덕에 대형사건을 맡은 선배들의 호출이 이어지면서 대검 중수부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요직도 거칠 수 있었다.

그러나 대쪽같은 성격이 그의 앞길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윤 당선인은 지난 2013년 박근혜 정부시절 국정원 댓글 사건 당시 국회 국정감사에서 윗선의 수사외압을 폭로하고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고 소신발언했다. 윤 당선인은 이 발언 후 지방 고검 검사로 좌천됐고, 4년여 간 소위 유배생활을 해야 했다. 그렇게 뒷전으로 밀려나는 듯 싶었던 윤 당선인은 부당한 권력의 압력에 절대 굴하지 않는다는 이미지 덕분에 2016년 최순실 특검 수사팀장으로 발탁되며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문재인 정부는 윤 당선인에게 인생의 가장 큰 반전을 선사했다. 문재인 정부 초기, 윤 당선인은 촛불혁명의 일등공신 중 한명으로 앞 기수 선배들을 제치고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됐다. ‘적폐청산’의 아이콘으로 앞장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중형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조국사태를 기점으로 문재인 정부와 윤 당선인의 인연은 악연으로 돌변했다.

당시 검찰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전방위 수사를 펼치기 시작했다. 윤 당선인으로서는 “살아있는 권력에도 엄정해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말을 그대로 이행한 것이었지만 검찰개혁을 앞두고 있던 정부여당으로서는 당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조 전 장관 후임인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의 전쟁이 시작됐고, 중대범죄수사청 설립을 시도하던 여당과도 충돌하며 문재인 정부와 불화가 극에 달했다. 해임과 불복, 소송까지 불사하던 윤 당선인은 결국 지난해 3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면서 임기를 고작 4개월 남기고 사퇴하기에 이른다.

윤 당선인의 사퇴는 충격적이었고, 동시에 의문을 남겼다. 문 정부와 갈등하며 그는 살아있는 정의의 상징이 됐고, 여론은 그의 무운을 빌었다. 그랬기에 갑작스러운 사퇴는 향후 그의 행보를 더욱 궁금하게 만들었고, 이같은 분위기가 윤 당선인 스스로 정치 입문을 선언하기도 전에 그를 대선후보 여론조사 1위에 이름 올리게 만들었다.

보수 진영의 뜨거운 러브콜이 쏟아진 지 3개월 여가 지난 6월 29일, 윤 당선인은 대권 도전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공정과 상식’이라는 시대정신으로 압도적인 정권 교체를 이뤄내겠다는 출사표를 던졌다. 기성 정치세력에 지칠 대로 지친 여론이 그를 지지했고. 각종 대망론이 그를 둘러쌌다. 윤 당선인은 익숙하지 않은 여의도 문법과 특유의 돌직구 발언 때문에 논란에 휩싸이는가 하면 이준석 대표와의 잦은 불화설, 무속인과의 연관성, 부인의 대선운동 불참 등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전두환 옹호’ 논란 발언이나 ‘개 사과’ SNS 글은 치명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 당선인은 지금껏 반짝 빛을 발하다 사라진 정치신인들과는 달랐다.

특유의 불도저 같은 맷집으로 국민의힘 대선후보 자리를 꿰찼으며, 선거를 불과 일주일 여 앞두고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를 이뤄냈다. 결국 정치에 노련한 적장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물리치고 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고, 살아있는 권력에 굴하지 않았던 그가 이끌어나갈 ‘윤석열 정부’에 전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박형남기자 7122love@kbmaeil.com

정치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