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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己巳)

등록일 2022-04-06 18:47 게재일 2022-04-07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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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래순 작가의 현대미술 작품 ‘침묵 1’,

육십갑자 중 여섯 번째 기사(己巳)다. 기토(己土)를 문전옥답(門前沃畓)으로 표현한다. 집 가까이에 있는 비옥한 논이며, 아주 귀한 재산을 의미한다. 사화(巳火)는 물상으로 겨울잠에서 깨어 나와 허기에 지쳐 독이 오른 뱀이다.

기사(己巳)는 초여름 정원(庭園)을 상징하며 지적이고 대중적이다. 어떤 고난을 당해도 구렁이가 담 넘어가듯이 여유로움을 부릴 줄 아는 지혜를 갖고 있다. 그러나 겉으로는 고집이 강하고, 불굴의 의지를 갖고, 확신에 차있는 모습이다. 때론 독선으로 흐르면 무엇이든지 받아들이는 흙토(土)의 성질이 강하여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향으로 나타날 수가 있다.

기사일주(己巳日柱)는 항시 분주다망하며, 뱀이 기어가다 머리를 세운 모습이라 활동력도 강하다. 총명하고 재주가 많기 때문에 자만심으로 빠질 수가 있다. 뱀은 혀끝이 두 개로 갈라진, 혀가 두 개인 동물이다. 한 입으로 두 말을 하며, 겉과 속이 다르다고도 한다. 호불호(好不好·좋음과 좋지 않음)가 명확하여 낭패하기도 한다. 그러나 좋음과 나쁨, 추하고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가 있다.

불경(佛經) ‘아함경’과 ‘열반경’에 ‘공덕천녀와 흑암천녀’ 이야기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녀가 길을 가다가 날이 저물어서 어떤 부잣집에 도착했다. “잠시 묵어갈 수 있겠는지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집주인은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어디서 오신 누구신지요?” “저는 공덕천녀라고 합니다. 저는 주인님이 원하시는 대로 금은보석과 말, 수레, 의복, 하인 등을 얼마든지 드릴 수가 있습니다. 하룻밤 묵어갈까 합니다.” “호오! 그렇소? 어서 들어오시오. 환영합니다.” 그리하여 집주인은 공덕천녀를 맞아들였다. 그런데 공덕천녀 옆에는 차마 눈 뜨고 보기 민망할 정도로 추악한 여인이 서 있는 것이었다. “아니 이런 경사스러운 때 나타난 당신은 누구요?”라고 묻자, “저는 흑암천녀라고 합니다.” “이름이 꼭 걸맞는구려. 당신이 하는 일은 대체 뭐요?” “저는 가는 집마다 재물은 없어지고, 마침내 망하게 되지요.” “썩 나가라! 우물쭈물하면 목을 베어버리겠다.” 그러자 흑암처녀는 싸늘하게 웃었다. “어리석은 주인이여! 언니가 곁에 계시는데 나를 이리 구박할 수 있소?”

“그럼 네가 공덕천녀님과 자매간이란 말인가?” “그렇소, 이 분은 내 언니이며, 우리 둘은 단짝이어서 늘 함께 다닌다오.” “믿을 수 없다. 공덕천녀님! 이 여자 말이 사실입니까?” 집주인은 마침내 결심한다. “정 그렇다면 나로선 두 분 다 사양하겠소이다. 나가 주시오.”

그런데 어느 가난한 집에 가자, 그 집 주인은 기뻐하면서 두 천녀를 맞아들이고 후대하는 것이었다. 좋은 걸 좋아하고, 싫은 걸 싫어하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그 둘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아서 앞면을 가지기 위해서 뒷면을 버릴 수 없다. 부처님은 이 비유를 드신 후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여기서 공덕천녀는 행복이나 삶을, 흑암처녀는 불행이나 죽음을 의미한다.”

사주(四柱)에 뱀 사(巳)가 있는 사람은 대체로 권력지향적인 경향이 있다. 승부욕도 강하고 질투심도 많다. 지혜로운 면이 있는 반면에 질투에 눈이 멀어 남들에게 날카로운 말을 해 상처를 줄 경우가 있다. 자신을 낮추어서 겸손하게 처리하면 출세할 운이 온다. 만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릇이며, 인내와 노력이 있어 성공이 따르는 성품이다.

중국 전국시대 제나라의 재상인 추기(鄒忌)는 남들보다 훨씬 키가 크고, 아주 잘 생겼다. 어느 날 아침 그가 좋은 옷에 좋은 모자를 쓰고는, 거울을 보면서 자기 아내에게 “온 나라 사람들이 미남이라고 떠드는 서공과 나를 비교할 때 누가 더 잘생긴 것 같소?”라고 물었다. 그의 아내가 “당신이 훨씬 잘생겼어요. 서공이 어찌 당신에게 비교될 수 있겠어요”라고 대답하였다.

추기는 자기가 서공보다 잘생겼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어서 자기의 첩(妾)에게 가서 “나와 서공을 비교할 때 누가 더 잘생긴 것 같소?”라고 물었다. 첩(妾)도 “서공이 어찌 당신만 하겠어요!”라고 대답하였다. 그 다음날 어떤 손님이 추기를 찾아왔다. 손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추기는 또 “나와 서공 중에 누가 더 잘생긴 것 같습니까?”라고 물었다.

그 손님도 “서공은 어른만큼 미남이 못 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런 다음날 마침 서공이 추기를 찾아왔다. 서공을 자세히 뜯어보니 서공보다 못함이 확실하였다. 거울을 앞에 놓고 뜯어보고, 또 뜯어보아도 서공보다 훨씬 뒤떨어졌다. 밤이 되어 잠자리에 누워서 주위 사람들이 입을 모아 자신을 추켜 세워준 사실을 거듭거듭 생각하다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나의 아내가 나를 잘 생겼다고 한 것은 나만을 사랑하기 때문이고, 애첩이 내가 더 아름답다고 한 것은 나를 두려워하기 때문이고, 손님은 나의 도움을 얻고 싶었기 때문이로구나!” 유향 <전국책> ‘제책(齊策)1’에 나오는 글이다.

류대창명리연구자
류대창명리연구자

추기는 한 나라의 재상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자기 자신을 볼 줄 아는 안목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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