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절기 가운데 열세 번째가 입추(立秋)다. 태양의 황경이 135도에 위치하며, 2024년에는 8월 7일(음력 7월 4일)이다. 음력으로는 7월의 절기다. 입추(立秋)는 대서(大暑)와 처서(處暑) 사이에 있다.
입추(立秋)는 ‘가을에 들어선다’는 뜻이다. 봄을 알리는 입춘, 여름을 알리는 입하, 겨울을 알리는 입동과 같이 계절이 바뀜을 알려주는 절기다. 이를 입(入)절기라고 하는데, 계절이 시작하는 절기를 의미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여름 기운이 강하게 남아 있다. 가을로 들어서려면 아직 한 달 이상이 남았다. 이런 시간 차이는 복사열 때문이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었지만, 간혹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기도 한다. 음력 칠월칠석이 지나면 밤에는 열대야가 식어가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때때로 태풍이 올라오면 거친 바람과 폭우가 쏟아지기도 하지만, 입추가 지나면 뜨겁고 덥지만 습하지 않은 날이 지속된다.
1년 벼농사의 성패가 이 때의 날씨에 달려있다. 입추는 벼의 성장에 중요한 절기이기 때문이다. 태양의 뜨거운 햇살을 받아야 낱알을 살찌울 수 있고, 벼가 제대로 누렇게 익어가기 때문이다. 입추에서 처서까지 비가 내리지 않아야 풍작을 기대할 수 있다. 예로부터 각 고을마다 비가 내리지 않게 해달라고 기청제(祈晴祭)를 지냈다.
입추와 처서 사이에 칠석(七夕·양력 8월 10일)이 있다. 칠석은 양수인 홀수 7이 겹치는 날이라 예로부터 길일로 여겼다. 견우와 직녀가 1년에 한 번 오작교(烏鵲橋)를 건너 만나는 날이다. 칠석날 내리는 비는 기쁨의 눈물이요, 다음날 내리는 비는 헤어지면서 흘리는 슬픔의 눈물이라 한다. 여름 하늘에 은하수를 중심으로 동쪽에 견우성(독수리자리), 서쪽에 직녀성(거문고자리)이 있다. 두 별은 약 16광년 떨어져 있다. 전설로만 전해진 사랑 이야기다.
‘입추 때는 벼 자라는 소리에 개가 짖는다’는 속담이 있다. 이때는 벼의 성장 속도가 빠르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또 ‘어정 7월, 건들 8월, 동동 9월’이란 말도 있다. 모를 심고 난 뒤 7월에는 어정어정 거리고, 8월에는 농한기라 건들거리며, 9월에는 발을 동동 구른다는 표현이다.
입추는 입춘에서 시작된 만물이 성장을 마감하는 시기가 되고, 동시에 추수를 위해 기운을 안으로 응축시키는 결실을 준비하는 때다. 유종유시(有終有始)가 연결되는 시점이 입추인 것이다. 유종(有終)은 유시(有始)를 위한 미래의 준비가 되며, 내일의 약속이다. 운이 바뀔 때 길흉이 크게 표출되는 일이 많이 생기게 된다.
전한(前漢)의 회남왕 유안(劉安·기원전 179~122년)이 저술한 ‘회남자(淮南子)’ 권5 ‘시칙(時則)’에 보면 맹추(孟秋)의 달, 즉 음력 7월에는 초요(招搖·북두칠성 자루 끝에 있는 별)가 신(申) 방향을 가리킨다. 이 달의 방위는 서쪽이며, 신(申)은 오행으로 금(金)에 해당한다. 색깔은 흰색이며, 숫자로는 9다. 맛은 매운 맛이며, 냄새는 비린내다. 맹추가 시작될 때 대문으로 기운이 들어오기에 대문에서 제사를 드린다. 제물로 간(肝)을 먼저 올린다. 간(肝)은 오행에서 목(木)이다. 금(金)이 목(木)을 이기기에 제물로 사용한다.
천자는 흰 옷을 입고, 흰 말을 타며, 흰 옥을 차고, 흰 기를 세운다. 입추는 가을이기에 금(金)의 기운이 왕성하므로 모든 복장, 의식, 행사 등에 금(金)의 색깔인 흰색을 사용한다. 가을의 정령(政令)을 내려 불효자와 불손한 자, 그리고 난폭한 자와 오만하고 교만한 자를 색출하여 벌함으로써 이 달의 기운에 보조를 맞춘다.
입추가 드는 날에 천자는 삼공, 구경, 대부들을 거느리고 서쪽 교외에서 가을을 맞이한다. 농사가 결실을 거두기 시작하니 천자는 햇곡식을 맛보게 되는데, 먼저 종묘에 올린 다음 먹는다. 관리들에게 명하여 세금을 거둬들이기 시작하고, 제방을 완전하게 하고, 강둑을 잘 살펴 수해에 대비하게 한다. 또한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감옥을 수리하게 하여 간사한 자를 잡아가두고, 재판을 신중히 하여 송사를 공평하게 한다.
명리에서 입추(立秋)는 신월(申月)이며, 가을의 시작을 의미한다. 오행으로는 신(申)이며, 금(金)에 해당한다. 신(申)의 글자는 펼 신(伸)에서 파생되었다. 시간은 오후 4시경이고, 달로는 8월이니 ‘만물이 활짝 편다’(伸張)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특히 지지 신(申)은 천간에 경(庚)에 해당된다. 경금(庚金)을 숙살지기(肅殺之氣)라 한다. 숙살지기는 가을의 쌀쌀하고 살벌한 기운을 말한다. 살(殺)에서 풍기듯이 만물의 성장을 멈추게 된다. 그래서 가을 햇살은 뜨겁지만, 습기가 적어 덥다기보다 따갑다는 느낌이 더 든다. 이때 벼도 영글어가고, 열매를 더 단단하게 하고 골고루 성장시키는 것이다. 사실 가을 햇살이 여름 햇살보다 더 무서운 힘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숙살지기의 기운 때문인지 이 시기부터 미뤄 왔던 사형을 집행한다. 중국 한나라 때부터 입추에서 입춘 전까지 사형을 집행할 수 있었고, 입춘이 지나면 형을 집행하지 않았다. 사마천 ‘사기’ 혹리열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왕온서라는 사람이 있었다. 젊은 시절 사람을 죽여 암매장하고, 남의 무덤을 도굴하는 등 악행을 저질렀다. 이후 관리가 되자, 도적을 체포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도적을 잡아 뇌물을 준 자는 죄가 백가지라도 처벌하지 않았다. 승진하여 하내군 태수까지 오른다. 하내군 호족 가운데 간악한 집안을 파악하고, 한무제의 재가를 얻어 처형한 자의 피가 10여 리나 흘러내렸다고 한다.
입춘이 되자 왕온서는 발을 구르며 이같이 탄식했다. “아! 겨울을 한 달만 늦출 수 있다면 족히 사안을 만족스럽게 처리할 수 있었을 터인데….” 살상을 통해 위세를 부리고, 백성을 아끼지 않은 것이 이와 같다. 결국 부정부패로 고발을 당하자 자진하였고, 오족(五族)이 처형됐다. 그의 집에는 재산이 천금이나 쌓여 있었다. 법령이 많이 세밀해질수록 도적이 많은 법이다. 인간의 끝없는 욕심의 결과는 지금도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