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벚꽃 단상

등록일 2022-05-01 17:58 게재일 2022-05-02 18면
스크랩버튼
이정희위덕대 교수·일본언어문화학과
이정희위덕대 교수·일본언어문화학과

올 4월 초 몇 년 만에 벚꽃구경을 갔었다. 낮에 걷기 운동 삼아 산책한 벚꽃나무 가로수 길은 벚꽃을 만끽하기에 충분했다. 그래도 뭐니 뭐니 해도 밤 벚꽃놀이가 최고다. 새삼 벚꽃의 아름다움에 취해 약 한 달 동안 벚꽃 세계에 빠져 지냈다. 수령이 족히 100년은 넘을 것 같은 아름드리 큰 나무에 만개한 벚꽃을 보면서 이렇게 큰 나무에 이렇게 많은 꽃을 화사하게 피우는 나무가 또 어디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니 벚나무밖에 없는 것 같다. 봄이 되면 어김없이 꽃을 피우는 개나리, 진달래도 늘 키가 고만고만하고 더이상 거목이 되지 않는다. 벚꽃보다 한 달 가량 앞서 피는 매화나무 역시 수령이 오래되었다 하더라도 벚나무처럼 큰 나무가 되지는 않는다. 벚나무는 크면 클수록 더 많은 꽃을 피운다. 신비로운 꽃나무다.

이러한 벚꽃의 아름다움을 제일 먼저 알아차린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의 국화(國花)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부분 벚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국화라는 것은 국기나 국가(國歌)와는 달리 법률 등에 의해 공식적으로 제정되는 경우가 드물고, 국민들의 의식 속에서 관습적으로 정해진다. 엄밀히 말해 일본 국화는 정해진 것이 없다. 그저 일본을 상징하는 꽃이 벚꽃이라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 때는 벚꽃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이 발동해 2003년에 한 시민단체가 강원도 횡성군의 3·1공원에 있는 벚나무를 잘라내야 한다는 운동을 벌였었다. 나도 아파트 주변, 학교 교정 내에 있는 벚꽃을 보면서 일본 나라꽃인데 하면서 불편한 마음이 불쑥불쑥 들곤 했다. 그래도 위안으로 삼는 것이 있다면 일본의 벚꽃의 원산지가 제주도라는 이야기다.

일본에서 벚꽃의 이미지는 단순히 나라를 상징하는 꽃이란 의미보다 더 큰 것을 내포하고 있다. 바로 무사도를 벚꽃의 이미지에 결부시켜 일본 정신의 상징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일본 나라시대에는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고 즐기는 꽃은 매화라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헤이안시대부터 벚꽃은 서민들에게 사랑받는 꽃으로 자리매김하고 여성의 화신으로 비유되었다. 특히 근세시대의 8대 도쿠가와 요시무네 장군에 의해 지금의 도쿄에 가로수로 벚나무가 대대적으로 심어졌고, 점차 일본 전역에 벚나무 심기가 장려되었고, 이후 서민들의 꽃놀이로 정착하였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벚꽃은 이미지로서는 여성의 꽃이었다. 그래서 근세시대에 성곽에 벚나무를 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일례로 지금은 일본에서 벚꽃놀이 명소로 알려진 아오모리현의 히로사키성에 1882년 벚나무를 심었을 때 성곽을 여성의 이미지가 강한 꽃으로, 게다가 놀이장소로 만드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해서 벚꽃을 뽑아버렸다고 한다.

근대 이후에 만개한 벚꽃이 지기 직전에 가장 화사한 모습을 보이고 미련 없이 깨끗이 진다는 데에서 무사도와 일치한다는 이미지를 결부시켜 일본의 국화로 만들어낸 것이다.

봄이 되면 벚꽃구경에 심취한 우리의 마음속에는 일본이란 이미지는 더이상 없게 되었다. 이제 벚꽃은 반일감정의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문화와삶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