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갑자 중 열 번째 계유(癸酉)이다. 천간(天干)은 계수(癸水), 지지(地支)는 유금(酉金)이다.
계유일주(癸酉日柱) 금수(金水)의 기운으로 맑은 물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너무 깨끗하다보니 사소한 것에 신경을 쓰며 결벽증이 있다. 닭의 형상이라, 항상 분주하고 모이를 쪼듯이 말이 많고 매서운 면이 있다. 닭 벼슬 있어 겉모습이 화려하며 잘 꾸미는 편이다. 깔끔한 미모를 갖고 있기에 미남 미녀가 많다. 계수(癸水)는 연약한 음수(陰水)다. 하늘에서는 비와 이슬(雨露)이고, 땅으로 내려오면 계곡물이 된다. 품성이 온화하고 냉정함을 유지하며, 사려 깊은 지혜의 인물로 타인의 마음을 헤아려 가뭄의 단비와 같이 도와주는 지혜로움이 있다. 계수(癸水)는 부드러운 모습이지만 유금(酉金)은 가슴에 날카로운 칼을 품고 있는 형상이다.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으며 이중적이다. 기존 질서를 바꾸려는 혁명적인 기질을 늘 간직하고 있다.
계유년(癸酉年) 1393년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국호를 조선(朝鮮)이라고 정한 해이다. 조선 건국 이후 최대의 과제는 조선왕조의 기틀을 잡는 사업, 즉 각종 문물제도의 정비였다. 세종의 재위기간은 조선시대 전체를 통틀어서도 가장 훌륭했던 태평성대로 손꼽힌다. 문종은 재위 2년 4개월 만에 서른아홉의 한창 나이로 병사하였다.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단종의 나이는 겨우 열두 살에 불과했다.
계유년(癸酉年) 1453년, 단종 1년에 일어난 계유정난(癸酉靖亂)은 세종(世宗)의 둘째 아들 세조(世祖)가 조카 단종(端宗)에게서 왕위를 찬탈하고자 일으킨 사건이다. 계유정난을 통해 수양대군은 문종(文宗)의 유지를 받들어 단종을 보필하던 김종서(金宗瑞), 황보인(皇甫仁) 등을 살해하고 조선의 실권을 손아귀에 넣었다. ‘난(亂)을 다스렸다’는 뜻인 ‘정란(靖亂)’이라는 명칭이 붙은 것은 수양대군이 김종서 등이 역모를 꾸몄다는 것을 핑계로 그들을 제거하였기 때문이다. 계유정난, 이징옥의 난(李澄玉-亂) 등을 통해 기반을 다진 수양대군은 결국 정란 2년 뒤에 단종으로부터 선위 받아 왕위에 올랐다. 조선의 제7대왕 세조(世祖)다.
세조는 즉위한 이후 나라를 바로 세우고 민생을 살피는 데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백성들의 삶이 나아졌을까? 세조가 실행한 개혁정책들은 불행하게도 크게 실효를 보지 못했다. 공신들이 많았으니 당연한 결과다. 세조에게 야망과 냉철한 결단력이 있기도 했지만, 그 혼자만의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기존의 판을 엎고 새로운 판을 짜려고 할 때는 반드시 조력자와 공신이 필요했다. 멸사봉공(滅私奉公) 즉 개인의 이익을 버리고 백성의 행복을 위해 일하겠다는 각오는 없어 보였다. 자기 가문과 신분 유지를 위해서 절대로 자기의 기득권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만의 싸움이지 백성의 삶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먼 나라 이야기다. 그러나 민초는 그들에 대한 믿음을 저버린 적이 없었다. 끝까지 신의를 지켜주기를 바랐을 뿐이다. 훗날 사대사화의 단초가 되기고 했다.
닭은 옛날부터 무엇보다 신의를 중히 여기는 새다. 그리고 다섯 가지 덕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머리에 붉은 벼슬로 관(冠)을 쓰고 다니니 문(文)이요, 발에 삼지창이 달렸으니 무(武)요, 싸울 때는 분전하여 감투정신을 보여주니 용(勇)이요, 먹이를 보면 서로 불러 함께 먹으니 인(仁)이요, 밤을 새워 때를 놓치지 않고 새벽을 알리니 신(信)이다.
계유일주(癸酉日柱)의 계수(癸水)는 비와 이슬같이 가냘프지만 끝까지 흘러가는 끈기와 집념이 있는 물이다. 물상으로는 가을철에 산사에 내리는 비의 모습이다. 고적하고 쓸쓸함이 묻어 있어 차갑고 냉정함을 느낀다. 하지만 외향적으로는 가장 화려하다. 계유(癸酉)는 검은 닭으로 오골계인 만큼 귀한 대접을 받는 군계일학의 자질이 있어 자신을 드러내 세상에 알리려는 본능적인 감각이 있고, 미래를 예측하는 신통력을 가지고 있다. 닭은 예로부터 어둠을 물리치고 밝음을 부르는 서조(瑞鳥)로 알려져 왔다. 빛의 도래를 예고하며 새벽을 알리는 닭은 민간에서 잡귀를 쫓는 주술적 영험을 가진 것으로 믿어졌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초에 벽이나 대문에 닭 그림을 붙여두면 잡귀가 달아난다고 여겼으며, 설날 떡국에도 주로 닭고기를 넣었다. 혼례 초례상엔 청보와 홍보에 닭을 싸서 놓았으며, 폐백에도 닭을 사용했다.
닭은 오덕(五德) 가운데서도 새벽을 알리는 정확한 울음소리(鷄嗚聲)를 으뜸으로 꼽았다. 새벽은 빛의 도래 즉 광명의 때를 의미한다. 이는 혼돈과 상극에서 조화와 상생으로 가는 천지개벽과도 직결된다는 점에서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윤동주 시인의 산문 ‘별똥 떨어진 데’에서 “이제 닭이 홰를 치면서 맵짠 울음을 뽑아 밤을 쫓고 어둠을 짓내몰아 동켠으로 훠히 새벽이란 새로운 손님을 불러온다고 하자”고 표현했다.
닭은 오래 전부터 우리 겨레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신라 김알지(金閼智)의 탄생설화를 보면 신라 탈해왕 9년(서기 65년)에 왕이 금성(金城) 서쪽 시림(始林) 숲속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날이 밝자 신하를 보내 이를 살펴보게 하였다. 신하가 시림에 이르러 보니 금빛으로 된 조그만 궤짝 하나가 나뭇가지에 달려 있고, 흰 닭이 그 밑에서 울고 있다. 신하가 돌아와 그 사실을 아뢰니 왕은 사자를 시켜 그 궤짝을 가져오게 한 다음 그 궤를 열어 보니 그 속에는 얼굴이 총명하게 생긴 어린 사내아이가 들어 있었다. 왕은 크게 기뻐하여 아이를 거두어 길렀다. 아이가 자람에 따라 아주 총명하고 지력이 많았는데 이름을 ‘알지’라 하고 금궤 속에서 나왔으므로 성을 김 씨로 하였으며, 금궤가 있었던 시림을 고쳐 계림(鷄林)으로 바꾸고 이를 나라 이름으로 삼았다고 한다.
우물 안의 개구리는 밤새도록 울어도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다. 그저 소음으로 들릴 뿐이다. 닭이 한 번 홰를 치면 천지만물을 깨운다. 천지는 만물이 생존하는 집이요, 어김없이 새벽마다 닭이 알려주는 시간은 집을 찾아오는 나그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