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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항쟁을 추억하며!

등록일 2022-06-12 18:03 게재일 2022-06-1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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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종 경북대 교수
김규종 경북대 교수

1987년 그해 여름은 습하고 무더웠다. 하지만 군부독재 세력과 건곤일척의 회전(會戰)을 앞둔 청춘들의 결기는 공고했다.

종철이를 민주주의 제단에 바친 이 나라 민중의 혈맥은 힘차게 뛰놀았다. 그들에게 지거나 밀릴 수 없다는 의지는 욱일승천하는 기세였다. 6월 10일을 기점으로 우리는 18일과 26일 세 차례에 걸쳐 거리로 춤추듯 나아갔다. 학교 부근 개운사 승려들까지 장삼(長衫)에 유인물을 들고 광화문 가는 버스에 동승했다.

거리 곳곳에서 터지는 최루탄과 지랄탄의 굉음과 뽀얀 연기도 전진하는 행렬을 막지 못했다. 일부는 명동성당으로 진입했고, 어떤 이들은 지하철 구간을 점거했다. 거리와 광장과 지하철에서 시위대는 백골단과 전투경찰에 맞서 치열하게 싸웠다. 거리는 시위대를 응원하는 시민들과 구경 나온 인파로 넘쳐났다. 이 나라 미래가 한판의 승부에 달렸다는 절박함이 느껴졌다.

최루탄 자욱한 거리를 뛰어다녔던 나는 대학로 부근에서 ‘민족극연구회’ 친구와 만났다. 그와 대화하다 우리의 발길은 명동성당으로 향했다. 밤 11시가 되어갈 무렵 거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던 시위대와 전경 무리의 긴장을 실감하던 그때! 갑자기 들려온 날카롭고 새된 소리 “전투 준비!” 아하, 그들은 그것을 전투라 불렀다. 명동성당 진입을 노리는 경찰과 그것을 저지하려는 시위대의 공방전이 시작될 찰나!

출근해야 하는 친구와 학교에 나가야 하는 나는 퇴각을 결정하고 헤어졌다. 하되 짧은 순간 귓전을 때린 네 음절의 전음(顫音)은 내 귓가에 생생하게 살아남았다. 그는 누구였으며,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서슬 퍼런 명령에 따라 전투태세에 돌입한 그들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은 여전하다. 적들의 수괴(首魁) 두 사람은 영원한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는데….

2017년 가을부터 2018년 초봄까지 한반도 남단을 울퉁불퉁 수놓은 촛불에는 87항쟁의 기억이 서려 있다. 터무니없이 모자란 대통령과 그 졸개들의 협화음에 대응하여 방방곡곡에서 울려 퍼진 민주와 인권의 함성 그리고 화사하게 불타오른 촛불들의 춤사위에는 분명 1987년의 장엄한 투쟁과 승리의 기억이 담겨 있었다. 이겨본 사람들이 역사를 만들고, 싸워본 사람들이 투쟁의 선두에 서는 법이다.

불완전하게 마무리된 87항쟁과 ‘87체제’지만, 지금 우리가 향수(享受)하는 자유와 민주주의는 그때 산화해간 숱한 열혈 청년들의 피와 땀과 눈물의 결실이다. 눈을 떠보니 박 아무개와 전 아무개가 대통령이었던 사람들과 눈을 떠보니 민주와 자유가 공기처럼 차고 넘친 사람들의 세상은 각별한 것이다. 싸워서 얻어낸 사람들과 공짜로 동승한 사람들의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천양지차(天壤之差)다.

1987년 6월 위대했던 민주항쟁의 날을 맞으니 그 시절 향수가 걷잡을 수 없이 떠오른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이라 했지만, 가버린 순백의 시절이 못내 그리워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아, 자유여, 민주여, 환하게 빛나던 청춘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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