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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교수 그리고 권력

등록일 2022-09-19 18:06 게재일 2022-09-2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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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변창구대구가톨릭대 교수·국제정치학

대학은 ‘진리탐구의 전당’이고, 교수는 ‘가치’와 ‘당위’를 가르치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명을 가지고 있는 대학과 교수들이 권력의 눈치를 봐서야 되겠는가? 김건희 여사의 학위논문 표절과 관련하여 해당 대학과 교수들이 보여준 정치적 행태는 매우 실망스럽다.

국민대는 2008년 김건희 여사에게 박사학위를 수여했는데, 이미 2007년 국민대 연구윤리위원회는 “타인의 아이디어나 연구내용 등을 인용 없이 도용하는 행위를 표절”로 규정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국민대는 최근 표절에 대한 조사결과 발표에서 “베꼈다 해도 연구내용의 핵심 부분이 아니면 괜찮다”는 매우 정치적인 판정을 함으로써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졌다.

이에 국민대 교수회는 자체 재검증을 위해 전체교수투표를 추진했으나 대학본부와 교무위원들의 개입으로 찬성 38.5%, 반대 61.5%로 부결되었다. 이는 대학과 교수들이 ‘지성적 판단’을 하지 않고 ‘지능적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식인의 침묵이 범죄’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 권력 앞에 좌고우면(左顧右眄)한 대학과 교수들이 내린 정치적 판단은 ‘역시 Yuji대’라는 오명(汚名)을 남겼다.

논문 표절의 피해자인 숙명여대 구연상 교수는 “출처를 숨기는 표절은 정신적 도둑질”이라고 하면서 “국민대가 도둑질을 방치한 악행을 저질렀다”고 비판했다. 자신의 논문을 “인용부호, 각주, 참고문헌 없이 몰래 따왔기 때문에 100% 표절이 맞다”고 반박하면서 “어떻게 그런 논문이 통과되었는지 불가사의하다”고 비판했다.

나아가 전국 14개 교수·학술단체는 ‘김건희 여사 논문표절 검증을 위한 범학계 국민검증단’을 구성하여 1개월여 조사 끝에 그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해당 박사학위논문은 구연상 교수의 논문 외에도 9명의 논문을 표절하였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해피캠퍼스, 디지털타임스, 점집 홈페이지, 사주팔자 블로그 등에서 복사 또는 짜깁기했음이 밝혀졌다. 인용 출처는 대부분 표시되지 않았고, 정상적으로 표기된 것은 187쪽 가운데 8쪽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엉터리 논문을 표절이 아니라고 판정했으니 어이가 없다. 물론 교육부의 행·재정적 지원과 감독을 받아야 하는 국민대로서는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곤혹스러움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정의와 진리의 전당인 대학이 취해야 할 태도가 아니다. 대학의 정의가 무너지면 나라의 정의도 무너진다. 최고의 지성인 교수들이 불의와 야합한다면 나라의 정의는 누가 지키는가?

‘학생과 동문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대학’이 있고, ‘교수를 부끄럽게 만드는 교수들’이 적지 않다. 교수가 ‘올바른 교수의 길’을 가려면 ‘권력과 일정한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 권력의 주구(走狗)노릇을 하는 정치교수들은 교수라고 할 수 없다. 표절 당사자인 김건희 여사의 사죄와 학위반납은 물론, 논문의 지도교수와 심사교수들도 책임을 통감하고 사과해야 한다. 대학은 대학답고 교수는 교수다워야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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