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0시 반에 강의가 있는 아침은 여유롭다. 이번 학기 수업 가운데 사흘이 9시에 시작한다. 그런 아침나절에는 7시에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 강의 내용을 미리 살피고, 이것저것 보충하려면 조금 서둘러야 한다.
하지만 2교시 수업이 있는 이틀은 상대적으로 넉넉하다. 그런 날 아침 대학원동 앞 너른 인도에 꼬맹이들이 풍선을 하나씩 들고 저쪽에서 걸어온다. 재잘재잘 조잘조잘 웅얼웅얼하면서 손에 손 맞잡고 걸어오는 것이다.
숫자 헤아리는 버릇이 있는 나는 아이들이 11명, 인솔 교사가 3인임을 확인한다. 네다섯 살 먹은 녀석들이 앙증맞게 내 옆을 지나간다. 가던 길 멈추고 돌아보던 나는 휴대전화를 꺼내 아이들 모습을 사진기에 담는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혼잣말한다. ‘세 명의 선생에 아이들이 열하나. 좋아졌네. 그래, 사람 대접받는 세상이 오긴 왔구나.’
생각은 어린 시절로 치달린다. 내가 다닌 국민학교는 전국에서 학생수 3위를 자랑했다. 학년별로 18반에서 20반까지 있었고, 학급당 학생은 예사로 90명이 넘었다. 그 많은 학생을 담임 교사 한 사람이 책임져야 했다.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에서 우리는 뛰고 달리고 장난치고 도시락 먹고 공부하고 벌을 서가며 성장했다. 아이들이야 그렇다 쳐도 선생님들의 노고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음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경제성장 한다고 교육 관련 비용을 국민 개개인에게 넘겨버린 정부 때문에 가난한 부모들은 육성회비 때문에 허리가 부러질 지경이었다. 한 집에 너덧 명의 자녀가 기본이었던 시절이었으니, 도시락 싸는 것도 대단한 일이었던 엄혹한 시기를 살아남아 머리에 서리가 내렸다. 그런 초로의 인생에 스치듯 다가온 유치원생들을 보니 감회가 남다르게 찾아왔던 게다.
때마침 아침 바람이 차갑지 않고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고 있어서 아이들의 가을 나들이를 축복해주고 있었다. ‘저 꼬맹이들이 내 나이가 되어도 우리 푸른별 지구가 건강해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근대 성립 이후, 특히 산업혁명 이후 인간이 불러온 지구 온난화는 분명히 재앙 수준이다. 1만2천년 전에 시작된 간빙기 홀로세의 기후 조건에 힘입은 인류문명이 지나치게 지구를 옥죄는 바람에 지구의 회복탄력성이 악화일로(惡化一路)를 걷고 있다.
202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지구 온난화를 최대한 저지하지 않는다면, 저 어린것들의 앞날은 보장하기 어렵게 된다. 가뜩이나 탐욕스럽게 젊은 세대의 등골을 빼먹은 한반도의 기성세대 아닌가?! 희대의 4대강 사업으로 사기 처먹고, 아파트와 원룸 가격 폭등시켜 젊은이들 피를 흡혈귀처럼 빨아 먹은 타락하고 노회한 세대 아닌가. 거기에 지구 온난화가 불러일으키는 최악의 환경파괴까지 덤터기 씌운다면 이건 정말 인간이라 불릴 자격조차 없는 파렴치다.
평등이니 공정이니 하는 미사여구로 대중을 속여먹고 우려먹는 짓은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저 어린것들의 눈동자 앞에서 새빨간 거짓말은 집어치워야 마땅하다. 저 아이들의 환한 미래를 위해서 이제라도 발 벗고 나설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