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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읽기를 권유함

등록일 2022-10-30 18:14 게재일 2022-10-3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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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위덕대 교수·일본언어문화학과
이정희 위덕대 교수·일본언어문화학과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소설 ‘파친코’의 첫 문장으로, 최근 TV에서도 책 소개로 흘러나오고 있다. 한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강한 인상을 주는 문장이지만 곰곰이 되새겨보면 어려운 문장이다.

역사는 우리 인간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 역사의 흐름의 방향이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과는 다르게 흘러갔다는 이야기이다.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 의해 역사의 방향이 틀어졌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파친코’의 첫 문장 번역은 처음에는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였다. 이 문장은 원문을 보지 않더라도 틀린 문장이다. 역사가 신이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닌 이상, 역사가 우리를 망칠 수는 없지 않은가.

원문은 ‘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이다. ‘fail’은 타동사로 ‘망치다’라는 의미로 번역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의 의견이다. 번역자는 독자들에게 좀 더 강한 인상을 주고자 ‘망쳐놨다’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잘못된 해석이다. 번역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잘 보여주는 예인 것이다.

올 7월 말에 한국에서 두 번째로 출판한 ‘파친코’에는 처음 번역한 문장을 수정해서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로 했다. 우리말의 ‘저버리다’가 이렇게 무게감 있게 다가오기는 처음이다.

올 여름 나는 ‘파친코’를 미리 출판 예약으로 구입해서 그날로 다 읽어버렸다. 완독까지 며칠 걸릴 거라고 예상했는데, 하룻밤 사이에 다 읽고 말았다.

책은 ‘파친코1’, ‘파친코2’로 700쪽이 넘는 장편소설이지만, 비교적 술술 읽혔다. 내용이 쉬워서가 아니다. 책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책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우리의 이야기인 것이다.

소설 속 시간적 배경은 1910년부터 1989년까지로 먼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소설 속 공간적 배경은 한국, 일본, 그리고 미국이 등장한다. 올 해 읽은 책으로는 가장 울림이 컸다.

‘파친코’는 우리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보다 먼저 미국에서 출판되자마자 큰 반향을 일으켰고, ‘뉴욕타임즈’, ‘USA투데이’, 아마존, BBC 등 75개가 넘는 주요 매체에서 ‘올 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또한 애플TV에서 동명의 드라마로 제작해서 전세계에 동시 공개되었다. 그리고 전세계 사람들이 ‘파친코’ 드라마를 보고 한국과 일본과의 역사적 관계를 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문학이 지닌 파급력인 것이다.

이제 우리의 이야기를 우리가 직시해야 한다. 먼저 소설 ‘파친코’ 읽기를 권유하고 싶다. ‘파친코’가 우리나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된다면 전세계 독자들의 반응이 더 뜨거워질 것이다. 그리고 드라마 ‘파친코’도 하루 빨리 우리의 TV를 통해 쉽게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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