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3일 22세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테헤란에서 이란 ‘도덕 경찰’에 체포된다. 그녀가 체포된 이유는 머리카락 일부가 보일 정도로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것이 전부다.
사흘 뒤에 의문사한 아미니를 추모하면서 ‘히잡 시위’가 불타올랐다. 히잡 시위의 슬로건은 ‘여성, 생명, 자유’다. 히잡 시위로 지금까지 사망자 200여 명과 2천명 이상의 구금자가 발생했다고 외신은 보도한다.
검사 출신으로 검찰총장을 역임한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이 7월 22일 제정한 ‘히잡과 순결의 날’이 히잡 시위의 원인 가운데 하나다. 여성 작가이자 예술가인 28세의 세피데 라슈노가 옷차림이 불량하다는 이유로 성희롱을 당한 끝에 체포되었는데, 그것의 근거가 ‘히잡과 순결의 날’이었다. 이란 여성들의 옷차림에 국가가 지시하고 명령하는 것이 일상화된 게다.
히잡 시위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지고 있는 까닭은 이란 정부의 통제적인 사회정책, 독재정치, 기득권 세력의 부정부패, 국제사회의 제재로 인한 심각한 경제 상황 등이다.
1979년 호메이니가 주도한 혁명으로 팔레비 국왕이 쫓겨나고 이란에는 정교일치의 신정정치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정보통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세계가 한 지붕 아래 살아가는 21세기에 시대착오적인 권위주의 정권이 득세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란의 젊은 세대는 종교적인 억압에 불만을 품고 세속화를 추구하며 한류 열풍에 열광한다. 반면에 특권층은 부정부패로 엄청난 부를 축적하여 대를 물려가며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전한다.
이런 복합적인 상황에서 터져 나온 아미니의 의문사가 이란 청년들을 격동시킨 것이다. 여성들이 단순히 히잡을 안 쓰겠다고 일으킨 시위가 아니라는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여성과 생명과 자유에는 많은 것이 함축돼 있다. 여성 인권운동이 19세기 후반에 태동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지만 많은 나라에서 여성 인권은 사각지대에 있다. 팔레비 체제에서 자유롭게 살았던 이란 여성들에게 호메이니 체제와 그 연장은 질곡 그 자체다. 여성이 자기들이 옷차림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남성들이 요구하는 대로 옷을 입어야 한다는 시대착오적인 면이 지적되어야 한다.
생명의 근저에는 여성이 자리한다. 여성과 생명은 등가(等價)이며 언제나 등치(等値) 가능하다. 여성과 생명 모두에게 자기 의사(意思) 결정권이 부여되어야 함은 너무나 자명하다. 그들에게 자유가 주어져야 하는 것 또한 필연의 수순(手順)이다.
여성들의 정치적-사회적-문화적 자기 결정권을 온전하게 부여하지 않는 나라는 분명히 독재국가이거나 인권 후진국이거나 시대착오적인 왕조 국가일 것이다.
이란의 히잡 시위는 세계 곳곳의 동조 시위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것은 이란 청년들의 시위에 담긴 정당성과 세계 시민들의 살아있는 연대 의식이 서로 결합한 까닭이다. 이란 청춘들의 목숨을 건 분투 노력을 강력히 지지하며 승리의 그 날을 간절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