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복이가 또 집을 나갔다. 언덕바지에 자리한 과수원에 눈바람이 일렁인다. 과수원 초입에 있는 점복이 집에 온기가 없다. 기숙씨는 목줄을 걷어 집 앞에 두고, 건너에 있는 야옹이집 방문을 열어 묻는다. 눈도 오구만 점복이 어디 갔어? 그들은 게으른 표정으로 힐끔 올려다 볼뿐 꿈쩍도 하지 않는다. 먹이 한 국자를 부어주고는, 닭장으로 들어가 계란을 주워 나온다.
기숙씨는 딸이 안고 온 강아지를 내치지 못했다. 녀석의 얼굴은 갓 만들어 둔 노릿한 메주를 살짝 쥐었다 놓은 것 같고, 다리는 과식이라도 하면 배가 땅에 닿을락 말락할 길이다. 눈가에 검은 점이 있어 점복이가 된 녀석은 주인이 밭에 있을 때는 밭에 있었고, 비닐하우스에 있을 때면 그 곳에 있었다.
기숙씨가 집밖으로 나갈 때면 눈물 그렁한 표정으로 쳐다봐 할 수 없이 차에 태워 다니곤 했다. 그녀가 자주 가는 친구네 고물상에 점복이 혼자 가기 시작한 것은 오래 지나지 않아서였다. 외출할 때 집에 혼자 두고 가면 점복이는 마치 그 곳에서 만나기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먼저 고물상에 와서 주인을 기다리곤 했다. 점복이 거기 와있다는 전화를 받은 그녀는 별 볼일이 없으면서도 녀석을 데리러 고물상에 가야 했다.
꼭 다문 입 사이로 덧니까지 튀어나온 녀석은 기숙씨와 함께 있는 것을 단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다 기억한다. 점복이 공원에 있더라. 하이고 녀석 거기까지 와 갔노. 점복이 향교에 왔네. 조금 전까지 여기 있더만, 거는 또 언제 갔노. 그녀는 사흘이 멀다 하고 걸려오는 전화에도 몸빼바지에 장화 차림으로 녀석을 데리러 갔다. 혹여 차에 치일세라 걱정이라는 말에 지인은 언젠가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 녀석을 봤다고 했다. 파란불로 바뀌자 사람들 따라 건너는 폼이 주인보다 낫더라며 웃었다. 기숙씨는 발 달린 짐승이 어디를 못 가겠냐며 더 이상 데리러 가지 않았다. 짧은 다리로 녀석은 동네 곳곳을 나보다 더 잘 아는 것 같았다.
세상이 궁금한 점복이 목에 줄이 매인 것은 경찰아저씨의 호통 때문이었다. 점복이 지금 첨성대에 왔습니데이. 그 집의 개가 지금 월영교에 있습니다이 이래가 되겠습니까. 보소, 지금 시장에 왔다 아입니까 진짜 이럴랑교? 벌금 매기까요?
기숙씨는 하늘도 보고 날아가는 새도 보라고 밭에 길게 와이어 줄을 설치하고는 목줄을 매달았다. 건너편에 대여섯 마리나 되는 야옹이의 집을 지어주고 그 옆에는 닭장까지 마련했다. 그들끼리 서로 쳐다보며 살라는 그녀의 뜻과는 달리 녀석은 가끔 목줄을 벗어놓고 집을 나간다. 어떤 날은 새 연인의 집에서 몇 날을 보내고 오곤 했다. 산책길에서 만났다는 지인의 말에 기숙씨는 녀석의 여행이 빨리 끝나고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점복이가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산으로 들로 얼마나 헤집고 다녔는지 온 몸에 도깨비 풀이 범벅이다. 기숙씨는 털에 엉겨 붙은 것들을 떼어내느라 식겁을 한다.
10여 년 전 그날 아들의 모습이 그랬다. 비바람이 치던 겨울 늦은 밤, 제 키만 한 가방을 앞뒤로 맨 아들이 양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현관문을 들어섰다. 워킹홀리데이에서 번 돈으로 여기 저기 돌아다니고 있다던 녀석이 온다는 소식도 없이 불쑥 나타난 것이다. 남편과 나는 거지꼴을 한 아들의 모습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마지막 남은 돈만큼 샀다며 술과 안주가 든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벌렁거리는 가슴을 이야기가 담긴 소주잔으로 가라앉혔다.
어둠이 겹겹이 쌓인 시간, 전화벨이 울린다. 다음 달에 미국 간다는 아들의 전화다. 코로나로 몇 년 동안 갇혀 있느라 발바닥이 가려웠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왜’라고 물었다. 산티아고 길에서 사귄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다고 한다. 10주년 기념이라는 말에 나는 더이상 묻지 않았다. 기념해야 할 여행이 어디 그것뿐이던가. 전화기 너머 목소리는 벌써 사막을 걷고 강을 건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