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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리단길 유감

등록일 2023-04-17 19:50 게재일 2023-04-1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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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덕구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홍덕구포스텍 소통과공론연구소 연구원

포항과 경주는 지척이다. 경주에 가면 주로 황리단길에서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신다. 황리단길의 경관은 1960, 70년대에 지어진 구축을 리모델링한 것이 주를 이루지만 일본식 이자까야(주점)나 일본식 라면집, 퓨전 일식집 등도 적지 않게 눈에 띈다. 실제로 온라인에서 여행 후기를 찾아보면 ‘일본풍 가게가 많다’는 감상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러한 가게들의 맛과 서비스에 만족했다는 반응이 많지만, 기대했던 풍경이 아니었다며 실망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이른바 ‘황리단길 유감’이다.

황리단길이 소위 ‘왜색’에 물들었다고 단순하게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다. 황리단길에는 일식 외에도 맛있는 식당과 카페, 재미있는 상점들이 많이 있다. 특히 십 원짜리 동전에 불국사 다보탑 문양이 있다는 점에서 착안해 만들어진 ‘십원빵’은 매우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진짜 문제는 ‘황리단길 유감’에 내재된 지방에 대한 대상화와 고정관념이다. 서울(수도권)에서 이따금씩 여행 삼아 지방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지방이 그들이 생각하는 ‘지방다움’을 유지하기 바란다. 경주는 신라 천년고도, 전주는 한옥마을, 부산은 자갈치 시장의 분위기가 나야만 한다. 지자체는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고자 ‘지방다움’을 강화하는 사업들을 진행한다. 성공적인 사례도 있지만, 지나치다 싶은 경우도 많다. 10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된 인천의 ‘새우 타워’가 대표적 사례다.

이러한 기대와 부응의 프로세스는 기존 거주민들을 소외시키기 쉽다. 때로는 주거지역의 관광지화로 기존 거주민이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워지는 ‘투어리스티피케이션(touristification)’이 일어나기도 한다. 황리단길이 황리단길이 되기 이전, 그곳에서 살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황리단길’ 사진들에서 그들의 흔적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낙후된 주거지역에 활기를 불어넣는다는 본래의 목적과는 무관하게 지금의 황리단길은 일종의 테마파크가 되었다. 방문자들은 경주 주민들의 일상과는 완전히 분리된 공간을 거닐며 ‘맛집’과 ‘인스타 핫플’을 즐긴다. 사진만 잘 나온다면 일식이든 한식이든 상관없는 것이다. 지금 황리단길에 투입된 자본은 이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물론 관광객을 많이 유치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문제는 이런 식의 ‘#경주 여행’들이 축적되었을 때, 어떤 헤리티지(문화적 유산)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이다. 냉정히 말해 SNS에 올릴 사진이 잘 나오는 식당이나 카페를 꼭 황리단길에서 찾아야 할 이유는 없다. 황리단길보다 더 ‘핫한’ 또는 ‘힙(hip)한’ 거리가 나타나 입소문을 타게 되면 지금의 인기는 순식간에 식어버릴지도 모른다. 장소의 헤리티지는 기존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고 이를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과정이 누적되어 만들어진다. ‘경주 황리단길’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경험은 경주 주민들의 삶, 경주의 다른 장소들과 어떻게 윈-윈(win-win)할 수 있을 것인가? ‘왜색 논란’을 넘어 함께 고민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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