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회 인구위기특별위원회 소속 서정숙 국민의힘 의원이 연예인들의 싱글 라이프를 다루는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를 출생율 저하의 원인으로 지목하여 논란이 되었다. 서 의원은 지난 5일 열린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나 혼자 산다’, 불륜·사생아·가정 파괴 드라마가 너무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며 방송사가 따뜻하고 훈훈한 가족 드라마를 많이 개발해서 사회 분위기 조성에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처럼 대중문화를 사회의 질서를 교란하고 미풍을 해치는 주범으로 지목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무차별 살인이나 폭력 등의 강력 범죄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자동차 도둑의 시점에서 플레이하는 게임인 ‘GTA(Grand Theft Auto)’나 ‘둠(Doom)’, ‘서든 어택’, ‘배틀그라운드’처럼 총기를 사용하는 일인칭 슈팅 게임들이 원인이자 원흉으로 지목된다. 범인이 이렇게 ‘폭력적인’ 게임에 심취하여 폭력성을 배양해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2011년, MBC 뉴스데스크에서는 ‘게이머들의 폭력성을 알아본다’는 명목으로 PC방의 전원을 강제로 내린 뒤, 비속어로 불만을 표시하는 게이머들의 반응을 그대로 보도하기도 했다.
지배 문화, 주류 문화의 시선에서 대중문화는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휴식을 주는 ‘오락물’에 불과하다고 이야기된다. 하지만 동시에 대중문화가 기성의 사회질서를 교란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기도 한다. 불과 1년 전에도 성소수자를 긍정하는 메시지를 담은 남성 동성애자 아이돌 그룹 ‘라이오네시스’의 신곡 ‘It’s OK to be me’가 ‘동성애’를 이유로 MBC에서 방송 금지 판정을 받기도 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저런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은 대체 대중문화와 그 소비층을 얼마나 무시하는 걸까? 필자가 어릴 때 어른들은 ‘텔레비전은 바보상자니까 오래 보면 바보가 된다’고 했다. 이런 발상의 기저에는 대중을 한없이 수동적인 존재로 파악하는 시선이 내재되어 있는 듯하다. 대중에게는 스스로 생각할 능력도, 비판적 사고력도 없기에 대중매체가 발신하는 메시지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내면화해 버린다고 믿는 것이다.
문화연구의 선구자인 레이먼드 윌리엄스는 ‘문화는 일상적인 것이다’라는 명제를 통해 문학이나 예술처럼 ‘고상한’ 것만을 문화라고 여기는 엘리트주의적 문화관을 비판하였다. 노동자 계급, 서민 계급이 일상적으로 즐기는 대중문화야말로 인간의 삶에 녹아들어 있는 문화 그 자체라는 것이다. 의미는 대중문화 작품 안에 완결된 채로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생각과 경험과 만나 ‘디코딩(decoding)’ 되는 과정을 거쳐 비로소 완성된다. 지금 정치가 고민해야 할 일은 대중문화에 대한 ‘저격’이 아니라 국민들이 생각과 경험을 넓히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삶을 긍정하도록 돕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