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층석탑이 지키는 마을 탑리리

김순희 시민기자
등록일 2023-05-30 19:15 게재일 2023-05-31 12면
스크랩버튼
높이 솟은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
탑리여중, 탑리역, 탑리교회같이 의성 탑리리는 명찰처럼 탑을 가슴에 달았다. 오래전부터 이곳에 탑이 있어서 동네 이름이 탑리리(塔里里)라고 한다. 원래 이름은 탑리였는데, 행정구역 개편으로 탑리동으로 바뀌었다가 1988년에 있던 지명 변경으로 탑리리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탑을 찾아가려고 탑리 오층탑을 내비게이션에 입력하니 없었다.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이 정확한 이름이다. 탑리여중 운동장에 세를 들었다. 아니 탑이 통일신라 시대부터 그 자리에 있었으니 탑리여중이 세를 든 거라고 해야 맞는 말이다. 많은 이들이 여중 교문으로 들어가는 실수를 하니, 세월이 멈춘 것 같은 모습의 서울세탁소나 논산칼국수를 찾아가면 높이 솟은 탑의 상륜부가 쑤욱 고개를 내밀어서 찾기 쉽다.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은 응회암과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높이 9.6m의 큰 석탑으로, 통일신라 전기에 만들어진 탑일 것으로 추정되는 아주 오래된 탑이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형태가 상당히 온전하게 전해지고 있다. 소나무가 사방에 한 그루씩 서 있는 폼이 경주 능의 둘레솔 보다는 호위무사들이 경계를 서는 느낌이다. 둘레를 천천히 한 바퀴 돌면서 탑의 면면을 찬찬히 살피다 보면 저절로 우러르게 된다. 탑리리 오층석탑은 그 자체도 꽤 높은데다가, 위치도 넓은 평야에 있는 언덕 꼭대기에 자리 잡아 더욱 치솟는 것 같은 인상을 주고, 각 층의 지붕돌은 장대한 편이라 무게감까지도 상당한데, 배흘림 기법을 적절하게 이용해서 시각적인 안정감을 준다.


탑이 서 있는 자리에 관해서는 현재 아무런 기록도 전하지 않고 탑 주변에 남아 있는 변변한 유구도 거의 없어서 본래 절터의 이름조차 알 수 없으며, 탑이 위치한 지명을 따서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탑이 있는 동네의 오층 짜리 돌로 만든 탑이라는 뜻이다. 자기 이름을 자기가 붙인 꼴이다.


1962년에 국보 제77호로 지정되었다. 한반도 모전석탑 가운데 가장 초기 작품이라 할 수 있는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과는 형태를 달리하는데, 탑신을 벽돌형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지붕돌을 층층이 쌓은 형태로 다듬고 짜 맞추어서 처마와 지붕이 층단을 이룬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놨다. 다만 4층과 5층의 지붕돌은 다른 돌들로 짜 맞춘 것이 아니라 하나의 돌을 깎아 만든 것이다.


감실 외에 탑리리 오층석탑의 백미는 탑을 지탱하는 1층 모서리 기둥이다. 윗변이 좁고 아랫변이 넓은 배흘림기둥의 형태고, 2층부터 높이가 급격히 줄어들어서 석탑이 하늘 위로 치맛단을 들어 올린 듯하다. 배흘림기둥은 주로 목조건축에 많이 쓰였기에, 학자들은 탑리리 오층석탑을 벽돌로 만든 전탑의 축조 방법을 따르면서 목조건축 양식이 반영된 석탑이라고 말한다. 즉 초기 목탑의 형태에서 석탑의 형태로 바뀌어 가는 과도기의 형태라서 가치를 높이 인정받았다. 의성군에 있는 유일한 국보다.


2012년 10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탑을 보수했다. 보수공사 내용 중 주요한 사실은 일제강점기의 탑 수리에서 탑신에 이름을 새기는 안타까운 일과 광복 이후 보수 시에 기단부 일부를 탑신의 재질이 아닌 화강암을 사용했기에 이번 상층부 해체 보수 시 탑과 재질이 같은 응회암으로 기단 일부를 교체하고 탑의 보수 및 보존공사를 마무리했다. 교체한 석탑 부재들을 보존 처리해서 마당 한쪽에 전시했다. 이 낡고 부서진 돌들이 통일신라 시대의 석공들이 어루만진 탑의 일부였다가 이제는 탑에서 내려와 휴면에 들었다는 사실을 되새기면 세월의 무게가 느껴져 가슴이 뭉클하다. 그 외 의성군에 보물은 관덕리 삼층석탑, 빙산사지 오층석탑 등 7점이 있다. 함께 찾아보면 좋은 여행 코스이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사회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