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면 제거공사를 한다고 대학원동 건물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방학 기간에 공사를 진행하겠다는 본부의 구상에 따라 연구실을 정리해야 했다. 이번 학기 시작 전부터 나는 연구실에 있는 책을 정리할 요량이었다. 러시아어, 영어, 도이치어, 한국어 그리고 기타 언어로 된 적잖은 분량의 책을 단번에 정리하는 것은 어리석은 노릇 아닌가?!
나의 의도는 선량한 의지 때문에 관철되지 못했다. 몇 년 전 명예퇴직한 동료 교수가 인문학 카페를 열겠다는 뜻을 표명했고, 그곳에 다채로운 책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나 또한 퇴직 이후 인문학 카페의 고객이자 운영자로 자신을 설정했기에 서책 정리는 자연히 뒤로 밀려났다. 그러나 의지는 의지로 멈췄고, 정리해야 할 책만 그대로 쌓였다.
혼돈의 와중에 찾아온 대상포진과 종강, 학기말 시험과 작은아들의 결혼, 어머니 기일과 시민자유대학 강연 등으로 연구실 정리는 차일피일 미뤄졌다. 그동안 나는 여러 개의 책상 서랍을 조금씩 정리했다. 그러다가 아, 하는 소리와 함께 눈과 마음이 동시에 멈춘다. 오래전에 찍은 색바랜 사진과 예상치 못한 편지나 엽서가 곳곳에서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어떤 글의 주인은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고, 어떤 사진의 주인공은 아직도 내 마음에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연말에 받은 수많은 연하장과 단양 사인암 부근에서 찍은 사진을 모은 작은 사진첩이 인상적이다. 20년도 더 지난 사진 속의 나와 그들은 우리가 되어 환하게 웃고 있다. 그때 거기서 우리는 어떤 이야기와 사건을 경험했던 것일까?!
현재는 과거의 누적이고, 미래는 현재의 누적이다. ‘시간의 화살’이 말하는 것처럼 시간은 언제나 과거에서 출발하여 현재를 거쳐 미래로 날아간다. 그것의 역행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생각한다. 과거는 영원히 정지해 있고, 미래는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현재는 과거로 쏜살같이 달아나기 때문에, 시간은 미래에서 시작하여 현재를 거쳐 과거로 질주한다.
시간이 미래로 날아가든, 과거로 질주하든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사라진 시간 속에서 망실(亡失)된 나의 지나간 사건과 인연과 관계가 아쉽고 안타까운 것이다. 어쩌다가 나는 그 모든 사건과 인연과 관계를 잃어버리고 지금과 여기, 우두망찰 홀로 서 있는 것일까. 사라져버린 시간을 나는 어디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인가, 궁금하다.
젊은 날, 빛처럼 찬란하고, 색처럼 아름답고, 꿈처럼 빛났으며, 아침이슬처럼 영롱했던 눈망울과 힘차게 작동했을 심장 박동 소리를 어디서 다시 만날 수 있단 말인가?! 100세 시대를 말하는 세태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위한 100세인지, 묻지 않는다. 그저 존재함으로써 100세를 채우는 현상 자체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장수하는 것이 자랑인가?!
남들처럼 나 역시 인생 3막 초입에 서 있다. 앞으로 어떤 사건과 관계와 인연이 나와 함께 할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예전처럼 궁금하지 않은 까닭은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저 물 흐르는 대로, 달빛 비추는 대로 살아갈 모양이다. 오늘 밤엔 뻐꾸기 울음소리도 없이 고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