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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와 죽음을 넘어선다면?

등록일 2023-09-03 18:58 게재일 2023-09-0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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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종 경북대 교수
김규종 경북대 교수

오브리 드 그레이의 ‘노화의 종말’(2007)에서 발원하여 데이비드 싱클레어와 매슈 러플랜트의 ‘노화의 종말’(2020)과 호세 코르데이로와 데이비드 우드의 ‘죽음의 죽음’(2023)으로 이어지는 노화의 종식과 불사(不死)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런 논의 사이에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2015)가 자리한다.

‘사피엔스’에서 하라리가 제시한 것은 ‘길가메시 프로젝트’였다. 사피엔스의 가능 최대수명인 125세의 네 배에 이르는 500세 인생에 도전하는 기획이 길가메시 프로젝트다.

그런 문장과 만났을 때 ‘농담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요즘엔 ‘그럴 법도 하겠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만큼 현대의학과 약학, 여타 분야의 과학기술 발전이 눈부신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의 눈과 귀를 가장 자주 자극한 네 글자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일 것이다.

인간에게 숙명처럼 내장된, 누구도 거역할 수 없고, 비켜 갈 수 없는 필멸과 그 대척점에 서 있는 불사의 신! 연역법과 귀납법의 단골 소재로도 쓰였던, 누구나 죽는다는 자명한 논리. 그런데 그것을 뒤집겠다는 과학적 도전이 진행되고 있다.

죽음을 앞두고 10년 세월 병원을 들락거리고, 요양원과 요양병원 신세를 진 끝에 인생과 작별하는 요즘 세태에서 보면, 노화의 종말과 장수는 분명 축복이다. 40대에 찾아오는 노화의 첫 번째 제비를 20대나 30대로 돌려놓음으로써 건강과 활기를 유지하면서 노화와 작별하고, 마침내는 죽음을 망각하게 되리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2017년 가을학기에 디지스트에 출강하면서 만난 뇌 전공 대학원생과 이 문제를 생각해본 일이 있다. 20대 중반의 청춘인 그는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는 500년은 살고 싶다는 것이다. 젊은 대학원생이 진지하게 제기하는 죽음의 공포에 나는 단출하게 대답했다. “그 장구한 세월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지, 생각해봤니?!”

근자에 만난 고교 동창생이나 선배 교수들과 노화의 역전(逆轉)과 영생불사 혹은 최소 150년 200년 살아가는 인생 문제를 다시 꺼내 들었다. 흥미로운 점은 누구도 그렇게 긴 세월 살고자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150살, 아들딸은 120살, 손자는 90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는 게 대체적인 반응이었다.

하지만 세태는 조변석개(朝變夕改)가 다반사(茶飯事) 아닌가?! 불과 한 세대 전에 남녀의 결혼 적령기는 모두 30살 이전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하던 산아제한 포스터 문구가 ‘둘도 많다’로 바뀐 게 40년도 안 되었다. 그런데 지구촌 최악의 저출산 국가 운운하면서 나라 망할 것처럼 호들갑 떠는 시대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다. 우리가 잘 알지도 모르는 상황에 광속(光速)으로 다가오는 노화 역전과 무병장수 시대를 무작정 맞이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심사숙고(深思熟考)해보자는 게다.

2천500년 전에 공자가 ‘인무원려(人無遠慮) 필유근우(必有近憂)’라 하지 않았던가?!

破顔齋(파안재)에서 기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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