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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관하여

등록일 2023-10-29 15:55 게재일 2023-10-3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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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종 경북대 교수
김규종 경북대 교수

2023년이 두 달 정도 남아서 그런지 얼마 전부터 ‘시간’이란 어휘가 주위를 맴돈다. 몸도 생각도 자꾸 시간을 둘러싸고 돌아간다. 그러던 차에 미야자키 하야오의 만화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영화관에 도착한다. 무려 10년 만에 신작을 가지고 돌아온 스튜디오 지브리의 영원한 얼굴이자 노장(老壯) 미야자키 하야오의 투혼에 경의를 표한다.

‘그대들은….’에서 다뤄지는 시간은 2차 대전 혹은 일본식으로 표현하면 대동아전쟁(大東亞戰爭) 말기(末期)다. 당시 중학생 마히토가 겪는 신비로운 사건이 영화의 고갱이다. 마히토는 물론 하야오의 분신이다. 전화(戰禍)인지 또는 자연적인 발화(發火)인지 모르지만, 마히토는 불길 속에서 사라지는 엄마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나이 어린 마히토가 거대한 불길 앞에서 어떻게 할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예민하고 감수성 풍부한 마히토의 내면에는 무기력한 자아를 향한 원망이 자리 잡는다. 아버지가 사랑하는 여인이 있는 시골로 이사하면서 본격적인 사건이 시작된다. 신비롭고 수수께끼 같은 사건과 장면이 이어진다. 독자 여러분이 몸소 ‘그대들은….’을 감상하시기 바란다.

영화에서 흘러간 2년 동안의 시간이 의미심장하다는 사실은 덧붙이고 싶다. 마히토는 그 시간에 내면과 육신의 성장, 자신과 가족 그리고 현실 세계와 저승 세계 같은 복합적이고 추상적이며 비논리적인 것들에 대해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마히토는 사람이 놓치고 살아가는 수많은 빛과 그림자, 그림자의 배후에 자리하고 있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새로운 1년이 시작하고, 그 1년이 우리와 작별함으로써 또 다른 1년이 얼굴을 내밀면서 우리는 나이를 먹는다.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새해 전날 많은 사람이 승용차에 몸을 싣고 마치 전장(戰場)에라도 나가는 전사(戰士)처럼 비장한 얼굴로 해맞이를 하러 장도에 오른다. 왜 그러는지, 물어도 신통한 답변을 들은 적은 없다. 남들이 하니까, 뭔가 새로운 의지를 다지러,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닌가, 하는 군색한 대답 일색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분명 특별한 의미가 들어있을 것이다. 사라진 1년에 조의를 표하고, 새로운 1년을 향한 굳은 각오와 결의를 다지기 위함이 해맞이 행렬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언론에 보도되는 수많은 차량 행렬이 똑같은 목표와 방향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언제나 놀랍고 경이로울 따름이다.

요즘엔 시간 흐름이 예전과 달리 완만하고 여유로우며 넉넉하다는 느낌이 날로 강해진다. 평생 한 번도 감촉하지 못한 푸근하고 자유로운 감상을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언제나 쫓기듯 열렬하게 살았던 지난날의 나와 그것을 조용히 반추하는 거울 바깥의 내가 서로 어색하여 남산만 바라보고 있는 형국이다.

그래서 아주 좋다. 서둘지 않아서 좋고, 작은 일에도 진심이어서 좋고, 강연 준비도 차분하고 내실 있게 할 수 있어 좋다. 그래서 나직하게 속삭인다. ‘시간아, 정말 고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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