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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小雪)과 명리 이야기

등록일 2023-11-15 19:23 게재일 2023-11-16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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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안作 ‘Fruition’

24절기 가운데 20번째가 소설(小雪)이다. 태양이 황경 240도에 위치하며, 입동과 대설 사이다. 올해는 11월 22일(음력 10월 10일)이 소설이다. 소설(小雪)의 의미는 이날 첫 눈이 내린다는 뜻이다.

소설은 순음(純陰)의 달인 해월(亥月 음력 10월)이라 날씨가 황급히 추워지는 시기다. 얼음이 얼고, 첫 눈이 내리는 등 첫 겨울의 징조가 보이기 시작한다. 한편으로는 아직 따뜻한 햇볕이 간간이 내리쬐어 소춘(小春)이라고도 한다. 11월 말까지 약간의 따스함이 남아있어 농촌에서는 야외에서 끝내지 못한 일을 마무리해야 한다.

겨울이 빠르게 오건 늦게 오건 소설(小雪) 때가 되면 비가 눈이 되면서 겨울이 성큼 다가온다. 일반적으로 이때부터 바람이 심하게 불어 나뭇잎을 다 떨어뜨린다. 나무의 겨울나기를 위한 자연의 순리다. 어촌에서도 배를 띄우려 하지 않는다. 날씨도 추워지는데, 이를 ‘손돌추위’라고 한다. 산짐승이 먹이를 찾아 밭으로 내려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까치와 텃새들이 유난히 설치는 절기가 소설이다.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겨울이 덜 춥다고 하지만, 정도의 차이지 춥기는 매한가지다. 계절의 흐름 속에서 소설의 추위는 다음 해의 농사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날씨가 춥지 않으면 병충해가 늦게까지 창궐해 보리농사에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소설 추위는 빚을 내서라도 한다’는 속담이 있다. 소설에 날씨가 추워야 보리농사가 잘된다는 뜻이다.

전한(前漢)의 회남왕 유안(劉安·기원전 179~122)이 저술한 회남자(淮南子) 권5 ‘시칙(時則)’의 핵심은 시령(時令)사상이다. 시령사상이란 통치자가 1년 열두 달마다 그달에 나타나는 자연계의 여러 변화를 일일이 주목하면서 자연의 변화에 합당한 정치를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음력 10월이 되면 방위는 북쪽이고, 숫자는 6이다. 이때부터 물과 땅이 얼어붙기 시작하며, 꿩이 바다로 들어가 무명조개가 되고, 무지개는 더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천자는 북쪽 교외로 나아가 겨울을 맞이한다. 돌아와서는 국가를 위해 죽은 자들의 자손에게 상을 내리고, 홀아비와 과부들을 보살핀다. 신위(神位)에 기도하고, 거북점과 시초점을 치고, 주역 괘의 조짐을 관찰해 길흉을 살피게 한다.

이달에는 크게 술을 마시면서 겨울 제사를 지낸다. 천자는 하늘의 신에게 내년의 복을 빌고, 토지신에게도 정성스럽게 빌고 제사를 지낸다. 이 일들이 끝나면 조상신에게도 제사를 지내고, 농부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휴식하게 한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러한 풍습은 농경사회의 특징이라 볼 수 있다.

류대창 명리연구자
류대창 명리연구자

우리 농촌에서는 입동과 소설이 드는 음력 시월에 지난 한 해 동안 함께 수고하고 보살펴준 가축, 사람, 자연 등 모든 것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행사가 있다.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한 뒤 마을의 안녕에 감사하면서 햇곡식과 햇과일로 제사를 지낸다. 나라에서는 노인들에게 잔치를 베풀고, 각 가정에서는 한 해 농사를 무탈하게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준 가신(家神)과 조상들에게 감사의 예를 올린다.

음력 시월은 가장 풍요로운 시기이므로 열두 달 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달이라는 뜻에서 상달(上月)이라 불렀다. 상달에 이르면 함께 애쓴 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빚진 것을 갚는다. 살아있는 인간들에게 뿐만 아니라 동물과 눈에 보이지 않는 천지의 모든 존재와 죽은 이들, 신령들을 모두 챙기는 행사다. 유교 제례의 하나인 시제(時祭)도 지낸다. 이는 5대조 이상의 선조들에게 지내는 제사로 묘소에서 지낸다.

상달고사는 여성들이 주관하는 큰 행사였다. 고사를 지낼 때 농사를 짓는 가정에서는 조상단지, 성주단지, 터주단지 같은 신주단지에 추수한 햇곡식을 갈아 넣는다. 이곳을 책임지는 신령들에게 시루떡과 물을 올리며 지난 한 해 무사히 지낸 것에 감사하고 다음해의 안녕을 기원한다.

그리고 봉양을 받지 못하고 거리를 배회하는 모든 혼백에게도 조금이나마 가을의 풍요로움을 같이 나눈다. 이렇게 상달에 이르면 정성이 들여지고, 겨울나기를 위한 김장까지 끝나면 비로소 한 해를 마무리하게 된다.

시월상달, 해월에 시작되는 겨울의 시간은 외부활동 대신에 수공예와 같은 집안에서 할 수 있는 일에 열중하고, 겨울이 깊어질수록 정신활동에 몰두하게 된다. 명리에서도 겨울은 죽음과 같은 시간이라고 하지만, 활발한 신체활동을 멈추고 쉬게 하는 의미도 있다.

추울 때 벽에 틈이 생기면 찬바람이 들어와 감기에 걸리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魔)가 들어와 고통을 초래한다. 항상 흔들림 없는 경(敬)의 마음을 유지하도록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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