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를 맞으면 찾아오는 생각이 있다. 지나간 시간과 다가올 시간에 관한 상념이다. 연초에는 누구나 야심 있게 몇 가지 기획을 구상한다. 건강과 부 혹은 명예를 향한 갈망을 실현하려는 의지를 불태우는 것이다.
‘작심삼일(作心三日)’로 끝나는 허망한 생각이지만, 기획안을 구상할 때 우리는 웅대한 기획자로 거듭나는 순간을 경험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혹자는 신년 기획을 아예 일정표에서 제외해버린다. 훗날 찾아드는 허망함과 무기력증을 원천봉쇄하려는 것이다. 이런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아쉬운 점이 많다는 게 나의 소감이다. 인생사에서 우리가 충분히 실천하여 본래의 기획을 만족시킬 정도의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얼마 전 본 서책의 제목이 인상적이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된다(We become what we think about)’. 이런 부류의 서책은 다채롭게 출시돼 있는데, 이른바 ‘끌어당김의 법칙’에 속하는 책자들이 그것이다. 비슷한 내용이지만, 지은이들의 경험과 주장이 이채롭게 기술되어 있기에 숱한 독자를 거느린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독일 출신의 정치학자이자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에서 세 가지 무능(無能)에 관해 설파한다. 그런 생각을 하도록 그녀를 인도한 전범(戰犯)이 아돌프 아이히만(1906∼1962)이었다. 자신이 서명함으로써 얼마나 많은 유대인이 죽음으로 직행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이히만은 맡은 직무에 기계적으로 충실한다. 깊은 사유와 인식이 결여(缺如)된 국가 공무원 아이히만을 질책하면서 아렌트는 세 가지 무능을 지적한다.
‘생각의 무능(inability of thinking)’과 ‘언어의 무능(inability of speaking)’ 그리고 ‘행동의 무능(inability of acting)’. 참으로 통렬한 지적이다. 아렌트는 생각의 무능이 언어의 무능을 낳고, 언어의 무능이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고 주장한다. 아렌트의 명제에서 우리는 인간 행동의 바탕에 생각이 자리한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말이 씨가 된다는 표현이 있는데, 말의 근원을 파고들면 거기 생각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잠재의식이라 부른다. 누구나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하는 수가 있는데, 그것이 잠재의식에 각인되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 되어 나온다. 그 말은 다시 타자와 대화하는 과정에도 부지불식간에 흘러나오고, 그것이 다시 우리의 행동과 직결되는 것이다.
일상적으로 우리가 알게 모르게 하는 생각이 오늘의 우리를 만든 주재자이며, 앞으로도 우리는 만들어갈 근저에 자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생각이다. 그런 생각을 연말연시에 깊이 있게 돌아보면서 새로운 결심과 단호한 결기를 가지고 실천할 방도를 구한다면, 우리 인생은 풍요롭게 인도될 것이다. 실패할 것이 두려워서 기획조차 시도하지 않음은 비겁한 일이다.
게으르고 무능하며 타협하기 좋아하는 생각에 대못을 박고, 강력하게 경고함으로써 전혀 새로운 인생 항로를 기획하고 실천해보는 용감하고 웅혼한 새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