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선수에게 올림픽 출전이란 개인적 영광인 동시에 자신이 살아온 국가의 이름을 드높이는 의미 있는 일이다. 그래서 많은 선수들이 각자의 종목에서 ‘올림픽 출전’이란 목표를 가지고 오랜 세월 피땀을 흘린다.
여기 안타깝게 올림픽 출전이 좌절된 유도인이 있다. 현재 경북체육회 유도팀을 맡아 지도하고 있는 김정훈(43) 감독.
김 감독은 현역 시절인 2004년과 2008년 아테네올림픽과 베이징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섰다. 하지만, 결과는 아쉽게도 두 번 모두 2위. 한 국가에서 단 한 사람만 출전할 수 있는 올림픽 무대에 서지 못했다.
그러나, ‘운동선수를 그만둔 이후에도 인간의 삶은 남는다’고 믿었던 김 감독은 좌절하지 않았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며 성실한 유도 지도자로 성장하고 있는 것.
올 여름엔 프랑스 파리에서 올림픽이 열린다. 김정훈 감독이 가르치고 있는 경북체육회 소속 허미미(22), 김지수(24) 선수는 파리올림픽에 한국 유도 대표로 출전할 가능성이 높다. 김 감독은 제자들과 함께 빛나는 성과를 얻기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 중이다.
지난 15일 “30년 넘게 유도를 해오며 인간이 갖춰야 할 예의와 성숙한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길을 배우고 있다”고 말하는 김 감독을 본사 편집국에서 만났다. 아래는 그가 들려준 유도와 삶에 관한 이야기를 요약·정리한 것이다.
2004·2008년 올림픽 대표 선발전 출전
아쉽게 두번 모두 2위, 올림픽무대 좌절
선수꿈 이루지 못했지만 지도자로 새 삶
어릴적 유도 인기, 초교 4학년때 입문
당시 유도 명문이던 포항동지고 입학
최민호·김재범과 운동하며 서로 격려
2016년부터 경북체육회 유도팀과 인연
국가대표 코치 겸하며 바쁜 생활 이어가
선수들 위해 희생하는 것이 지도자 역할
고생한 선수들이 파리올림픽에서 우승
국민들에게 큰기쁨 선물했으면…
앞으로 유도 저변 확대 위해 힘 보탤 것
-고향과 나이는.
△1981년 경상북도 김천에서 태어났다.
-어떻게 유도를 시작하게 됐는지.
△중학교 때까지 김천에서 생활했다. 그 시기엔 어린이들 사이에서 유도의 인기가 높았다. 유도복을 입고 국제대회 시상대에 오르는 선수들을 TV에서 보곤 했으니까. 나도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기에 자연스레 동네에 있는 유도체육관을 찾았다. 그게 초등학교 4학년 때다.
-고교 시절은 포항에서 보낸 것으로 안다.
△당시 김천엔 유도부가 운영되는 고등학교가 없었다. 포항 동지고등학교가 유도 명문으로 알려져 있던 때고, 감독님이 찾아와 입학을 권유하기도 했다. 유도를 잘하는 동문 선후배들도 적지 않았다. 동지고에 입학하면서부터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다.
-중고교 시절 추억은.
△내가 중학생이었을 땐 김천만이 아니라 대구경북 전체에 유도 붐이 일었다. 지역마다 유도체육관이 적지 않았다. 그즈음 한국 유도선수들이 올림픽에서 메달도 따고 그랬으니까. 김천 출신 유도선수인 최민호, 동지고 후배이자 고향 후배인 김재범 선수 등과 함께 운동하며 서로를 격려하던 기억이 난다.
-운동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방황은 없었는지.
△마음속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고민의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보면 내가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게 유도밖에 없었다.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려본 적이 별로 없다. 대회에서 좋지 못한 성적을 얻었을 땐 마음이 떠났다가도 돌아보면 다시 유도로 돌아와 있었다.
-학창 시절을 보내며 아쉬웠던 건 뭔가.
△운동이 위주였으니 수업을 거의 듣지 못했고, 운동부 선후배와 동료 외에는 새로운 친구를 만들기가 어려웠다. 나이가 어렸으니 주말마다 제법 먼 길인 포항과 김천을 오가는 게 힘들기도 했다. 하지만, 대회에 나가 입상하게 되면 그런 힘겨움은 잊고 다시 운동에 매진했다.
-선수가 아닌 지도자로 생활한 것은 언제부터인지.
△국가대표가 되겠다는 꿈은 내려놓고 은퇴를 생각할 무렵에도 도민체전과 전국체전 등에는 참가했다. 그때 지도자의 역할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결혼하고 고향에 내려왔고, 2016년부터 경북체육회 유도팀을 맡았다. 이듬해엔 국가대표 코치도 겸임하게 됐는데, 두 팀을 오가며 정신없이 바쁘게 생활한 것 같다. 팔렘방 아시안게임과 도쿄올림픽 국가대표 코치로 현지를 다녀온 기억도 떠오른다.
-선수와 지도자 생활 중 어떤 게 더 어렵나.
△선수 때는 한 사람 몫의 역할만 하면 된다. 하지만, 지도자는 그렇지 않다. 자신보다는 가르치는 선수들을 중심에 놓고 생활해야 한다. 잘하는 선수는 자만하지 않도록, 못하는 선수는 절망하지 않도록 다독이고 격려하는 게 감독의 역할이 아닐까. 선수를 위해 희생하는 게 지도자의 길이라고 본다. 그래서 쉽지 않다.
-제자들에게 자주 들려주는 조언은.
△시련에 굴복하지 말고 처음 세운 목표를 향해 나아가라고 말해준다. 스포츠의 세계는 치열한 경쟁이다. 거기서 이겨야 주목받고 자신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선수생활이 끝나도 인생은 계속된다. 그렇기에 원하는 성적을 얻지 못했더라도 순간마다 최선을 다했다면 실망할 필요 없다고 가르치려 한다.
-선수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몇몇 대회에선 상위권에 오르며 메달도 땄지만, 오래 준비하고 기다렸던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이제 선수생활을 정리하고 감독이 됐으니 내가 가르치는 선수들이 그 아쉬움을 풀어줄 것으로 믿는다.
-현재 주목하는 제자는 누구인가.
△가르치는 선수들 모두에게 애정이 간다. 그중 경북체육회 유도팀 허미미 선수는 고등학생 때부터 주목해 보고 우리 팀으로 데려온 터라 관심이 조금 더 간다. 허 선수는 재일교포 3세다.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일 때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허 선수를 우리 팀에 입단시켰고, 그 과정에서 ‘한국·일본 입국시 2주 격리’ 등 여러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지금은 한국 국적을 취득해 여러 국제대회에 출전하며 좋은 성적을 얻고 있기에 유도 팬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란 것이 알려져 언론에서도 화제가 됐다. 더불어 우리 팀 김지수 선수도 주목받을 만하다. 두 선수가 파리올림픽에 나가게 된다면 여러분들의 뜨거운 응원을 부탁한다.
-유도가 가진 매력은 무엇인지.
△예의를 중시하는 운동이다. 선배와 후배의 관계가 엄정하다. 인간 상호간 지켜야 할 위계질서와 사회생활에서 필요한 예의범절을 배울 수 있는 운동이기에 어린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당신에게 유도란 무엇인가.
△인생의 전부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유도 선수 출신인 아내와 결혼했다고 들었다. 아이들이 ‘나도 유도를 하겠다’고 한다면.
△딸이 초등학교 5학년이다. 지금 열심히 일본어를 배우고 있다(웃음). 엄마와 아빠 영향인지 딸도 유도를 좋아한다. 하지만, 꼭 유도선수가 되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낯설고 새로운 땅으로 가서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다양한 경험을 한다면 자신이 열정을 가지고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자식들이 스스로를 믿고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으로 커가기를 바랄 뿐이다.
-올해 계획은.
△함께 고생한 선수들이 파리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국민들에게 기쁨을 선물했으면 한다. 비단 유도선수만이 아닌, 한국 국가대표 선수들 전부가 선전했으면 좋겠다. 인기 종목과 비인기 종목 선수들 모두가 올림픽 때만이라도 사람들의 박수와 환호를 받았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은.
△살아오는 내내 유도는 내게 적지 않은 기쁨과 성취를 맛보게 해줬다. 그러니, 앞으로도 유도의 저변 확대를 위한 일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