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륭
네모반듯하게 잘린 한 뼘 땅을 걸어 나와
최대한 무대 앞쪽으로 수줍은 듯 그는 뭔가를
나눠 주고 있다
아무도 안 죽었는지 살피는 표정으로
그는 땅속에 묻어 두었던 자신의 몸을 바람처럼 꺼내
조금 만지게 해 주는 것인데,
어디가 아프다고 하는 걸까?
희미해져 가는 그의 웃음과 눈빛 속으로
내가 먼저 아파야 하는
정말 먼
곳
땅에 묻힌 이도 이승에 다시 돌아오는 날이 있다. 제삿날이 그런 날이겠다. 위의 시에서 ‘그’는 자신이 묻혀 있던 “한 뼘 땅을 걸어 나와” “아무도 안 죽었는지 살”핀다. 제사에 모인 자신의 아이들이 잘 있는지 알고 싶어서이리라. 영정사진은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는 통로다. 이 사진을 통해 죽은 자는 “자신의 몸을” “조금 만지게 해 주”고, ‘나’는 사진 속 “그의 웃음과 눈빛 속으로” 빠져들며 아파하는 것이다.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