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울어져 있다 기울어져서 걸어다닌다 의자에 앉아 기울어져 졸기도 한다 진짜 기울어졌나 거울을 갸우뚱 바라보다 진짜 기울어진다 비탈에 서 있는 것처럼 구부정하게 기울고 척추를 바로 세워도 조금씩 기울고 기울어져 기우는 중이다 무너지는 중인가 쓰러지는 중이다 비스듬히 중력을 버티는 중이다 기우는 운명을 한탄하며 우는 중이다 울면서 기우는 중이다 오래 기울면 우는 것이다 기울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기울기에 갇혀 울다 지쳐 졸기도 한다 기울어지면 기울어진 쪽으로 향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디로? …… 기울어지는 삶. 중력의 힘에 꼿꼿히 맞선다기보다는 중력이 끌어당기는 데 따라 쓰러져가는 삶. 우리의 삶이 그렇지 않은가. “기우는 운명을 한탄하며 우는 중”인 삶. 하나 이런 기울어지기에 삶의 진실이 있다고 시인은 생각한다. 그렇기에 “기울기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 하여 울음은 진실의 표현이다. 그래서 그 울음은 시가 아닐까. 어딘지 모르는 “기울어진 쪽으로 향하”면서 흘리는 울음의 시. <문학평론가>
2026-02-11
배가 포구로 들어설 때 한참을 기다렸던 아낙이 사내의 어로(漁撈)를 올려 받는다 오늘의 양은 함지박을 반도 못 채웠지만 아낙의 몸피 어디서 흘러나오는지 웃음소리 통통하다, 사내도 일찍 온 저녁이 허기졌는지 어구를 둘러맨 발길이 재바르다 허전한 결실조차 서로의 위안이 되는 하루의 살림살이가 잔물결이니 나누어진 파도의 무게 곤핍한 수평을 거두며 주름져 가리 남자가 뒤돌아보며 아낙의 보폭에 저를 얹는다 바다는 줄곧 제 할 일에 골몰하다 …. 돈에 굶주린 도시인으로서, 바다에서 노동하며 “하루의 살림살이”를 함께 꾸리는 부부의 아름다운 모습은 나를 부끄럽게 한다. “파도의 무게”를 나누며 “허전한 결실조차 서로의 위안”으로 삼는 부부는 부부의 진정한 본질에 닿아 있다. 행복이란 저 부부의 ‘통통’한 웃음소리에 있지 않을까. “보폭에 저를 얹는” 부부의 삶은 자연에 가깝다. “줄곧 제 할 일에 골몰하”는 바다와 부부의 저 모습은 닮은 모습이다. <문학평론가>
2026-02-10
나는 내리는 비 아래 소나기를 피하겠다고 조금이라도 젖지 않아보겠다고 애초에 괴롭지 않겠다고 그러니 나가지 않으면 되는 거라고 차라리 묻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고 그러겠다고 전력으로 달릴 때마다 나는 알게 된다 저 날씨 끝에 누군가를 두고 왔다는 것 이제는 데리러 갈 수 없다는 것 …… 세상엔 소나기가 내린다. 소나기를 맞으면 괴롭다. 하여 소나기를 피하고 “조금이라도 젖지 않”기 위해 “나가지 않으면” 된다고, 시인은 생각했나보다. 그 홀로 살아가는 일도 쉽지 않다. 마음을 다잡고 “전력으로 달”려야 하는 칩거이기에. 그때 시인은 깨닫는다. 이 칩거의 삶에서, “저 날씨 끝에 누군가를 두고 왔다는 것”을 말이다. 이젠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여서 그 누군가는 영영 “데리러 갈 수 없”다는 것을. <문학평론가>
2026-02-09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신발도 신지 않고 외투도 걸치지 않고 배고프면 먹이를 찾고 때가 되면 짝을 찾고 몸이 시키는 대로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집을 짓고 알을 낳고 어느 겨울날 재수없이 바퀴에 깔려 피범벅이 되어도 새는 후회하지 않는다 제 살을 파먹으며 아파하지 않는다 …… 시인은 살면서 행한 어떤 일에 대해 후회와 함께 “제 살을 파먹으며 아파하”고 있는 인간이다. 이에 그는 자신의 삶을 극복한 표백으로서 새를 생각한다. 새는 자기 몸밖에 갖지 않은 가난한 존재이지만 자유롭다. “몸이 시키는 대로” 날아다니며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집을 짓고 알을 낳”으며 살아가는 존재. 자유로운 만큼 “바퀴에 깔”릴 위험도 많지만 “후회하지 않”고 “아파하지 않는” 강인한 존재가 새다. <문학평론가>
2026-02-08
종을 울리며/ 깊은 밤 기도를 합니다 종소리는 손을 벌리지도/ 뛰지도 않고서/ 방안을 채웁니다 몸도 없이/ 얼굴도 없이/ 먼 곳까지 갑니다 당신에게 갑니다/ 사랑한다는 소리로 속삭입니다 입술도 없이/ 소리가 되어/ 몸도 없이 당신의 몸을 울립니다 깊은 밤/사람의 몸이 울고 있습니다 한밤중에 일어난 일로/ 하늘 가운데서/ 별 하나/ 소리조차 없이/ 온몸이 반짝반짝 빛이 됩니다. … 종소리에 대한 아름다운 시. 외로이 고통 속에 있는 당신에게 종소리가 들린다. 기도와 함께 울리는 그 종소리는 “몸도 없”고 “얼굴도 없이” “방안을 채”우며 “당신에게” 간다. “사랑하는 소리로 속삭”이면서. 하여 “입술도 없”는 종소리는 “몸도 없이 당신의 몸을 울”리고, 당신의 몸은 ‘깊은 밤’에 홀로 “울고 있”게 될 것이다. 하나 이 홀로 우는 울음이야말로 당신의 ‘온몸’을 “반짝반짝” 빛이 되게 하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2026-02-05
이방인이라고 생각하면 만사형통이다 이방으로 걸으니 차림새가 신경 쓰이지 않는다 이방으로 먹으니 혼자여도 쓸쓸하지 않다 이방인으로 일하니 최저시급도 감지덕지다 이방인으로 기도하니 어느 신이건 상관없다 이방인으로 사랑하니 사랑도 사랑이 아니다 너는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고 너도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고 아무 말이나 막 하고 살아갈 수 있다 실수를 하면 이방인이 되어 사과하고 범죄를 저지르면 이방인으로 감옥에 간다 (중략) 이방인이니까 이토록 좁고 불편하고 낮은데 비로소 자유롭다 이방인이니까 …. 젊은 시인 김은선의 시. 정식으로 등단하지 않고 시집을 낸 시인이다. 위의 시는 MZ세대의 의식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이방인으로서 자신을 느끼고 또한 이방인이 되고자 하는 의식. “혼자여도 쓸쓸하지 않”으며 돈에 대한 욕망도 가지지 않고 누구에게도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하나 이방인이 가질 수 있는 건 자유로움. 차림새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말을 하나 안 하나 신경 안 써도 되는. <문학평론가>
2026-02-04
내려갈 버스를 기다리면서 두고 온 핏줄 생각하니 눈이 뜨거워진다 함박 함박 눈은 내려 시끄러운 세상을 덮어버린 어둑한 밤 우리는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가 눈은 마냥 퍼붓고 썰렁한 대합실에 소리 없는 뉴스만 보고 있다 무인 기계 앞에서 냉냉한 찬 기운 옷 속으로 파고들어 내일이면 새해 첫날 가지 말라고 내 손을 잡아당기는 순한 손 안 떨어지는 발을 달래면서 곧 오겠다고 돌아보면서 창가에 앉아 핏줄을 떠올려 보는 십이월 마지막 날 내일은 새해 희망은 보이지 않는데 다시 희망은 온다 적어 보는 겨울밤 …. “순한 손”을 가진, “두고 온 핏줄”은 누구일까. 시인의 손주 아닐까. “가지 말라고 내 손을 잡아당기는” 것을 보면 아이일 테니. 시인은 이 ‘핏줄’을 생각하며 버스 대합실에서 “마냥 퍼붓는 눈”을 바라본다. 만나고 이별해야 하는 삶,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지 알기 힘든, 삶의 쓸쓸함과 희망 없음에 대한 상념에 빠지며 말이다. 하나 “다시 희망은 온다”고 시인은 쓰는데, 마침 “내일은 새해”이기 때문이겠다. <문학평론가>
2026-02-02
내가 쪼개는 이 빵은 본래 귀리였고, 이 포도주는 한 이국 나무에 열린 열매 속에 잠겨 있었는데, 낮에는 사람이 밤에는 포도주가 곡물을 쓰러뜨리고, 포도의 기쁨을 깨뜨려버렸다. 이 포도주에 담긴 여름 피는 본래 포도나무 장식했던 과육 속에 박여 있었고, 이 빵에 배인 귀리도 한때는 바람 속에서 즐거웠는데, 사람이 햇살을 끊고, 바람을 멈춰버렸다. 너희가 쪼갠 이 살, 너희가 황폐하게 만드는 혈관 속의 이 피는 본래 귀리와 포도 육감적인 뿌리와 수액의 산물로 너희는 내 방 물어뜯고, 내 포도주를 마신다. …. 위의 시는 20세기 중반에 활약한 영국 시인 딜런 토머스의 시로,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일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인간 입장에서 세계를 바라본다. 빵과 포도주는 우리의 기본적인 먹거리로 매일 먹고 마시는 사물들이지만, 자연 입장에선 그것들은 폭력의 산물이다. 빵은 즐거이 바람을 맞이하곤 했던 귀리를 쓰러뜨리고 땅에서 뽑아 만든 것, 포도주 역시 포도 속에 박혀 있던 피를 뽑아낸 것이기 때문에. <문학평론가>
2026-02-01
바람을 보았다 바람을 타고 회전초처럼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시간을 보았다 씨앗의 모양을 띤 시간 사하라, 시간을 보았다 빨갛게 질릴 때까지 혼자 꿈꾸는 바람을 보았다 바람이 없는 사람들이 가서 바람의 휘청대는 몸을 맞히는 사하라, 몸속 열을 최대한 바깥으로 내보내는 얇고 커다란 귀와 헤엄치듯 울부짖는 발로 바람은 춤을 추고 있었다 당신이 일찍이 보지 못한 춤이었다 서로의 안쪽을 꺼내 오는 시간이었다 당신의 춤은 바람이라는 시간 나의 바깥을 흐른다 이 시의 ‘사하라’가 시인이 방문하여 시적 인상을 받은 실제의 사하라 사막일 수도 있겠지만 시적 상상이 만든 장소일지 모른다. 여하튼 사하라는 시에 따르면 바람이 보이는 곳이다. 그 가시화되는 바람은 또한 “씨앗의 모양을 띤 시간”을 구상화한다. 사하라에서 “혼자 꿈꾸는/바람”은 춤을 추며 “서로의 안쪽”, “몸속 열을” 꺼내오는 시간을 드러내고, 시간을 바람으로 바꾸어 “나의 바깥”에 흐름을 형성한다. <문학평론가>
2026-01-29
거리는 매독 환자의 코처럼 사라졌다 강은 군침 흘리는 정욕. 마지막 잎사귀의 속옷까지 벗어던진 유월의 정원이 음탕하게 누워 있다. 나는 광장으로 걸어 나와, 불타버린 구역을 붉은 가발처럼 머리에 뒤집어썼다. 공포에 떠는 사람들-무심코 내뱉은 내 외침에 다리를 벌벌 떤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를 비난하지도, 욕하지도 않는다. 마치 예언자에게 하듯, 내 발밑에 꽃을 뿌린다. 코가 사라져버린 이 모든 사람들은 알고 있다. 내가 자신들의 시인임을. (중략) 신 역시 내 책을 보고 울음을 터뜨리리라! 이건 말이 아니라, 뭉쳐진 경련 덩어리로군, 신은 내 시집을 겨드랑이에 끼고 하늘을 돌아다니리, 그리고 한숨지으며 그것을 친구들에게 읽어주리라. …. 러시아 혁명의 시인 마야콥스키. 위의 시는 혁명 이전, 그가 21살 때 쓴 시다. 그는 이 시에서 자신이 “매독 환자의 코처럼” 퇴폐와 죄에 둘러싸인 도시의 예언자적인 시인임을 선언한다. 이 시에서 자연은 순수한 대상이 아니라 정욕과 음탕의 이미지로 표현된다. 신이 그의 시집을 “말이 아니라, 뭉쳐진 경련 덩어리”라고 표현하듯 거침없고 대담한 이미지들로 전개되는, 종래 서정시의 틀을 뒤집은 폭탄 같은 시. <문학평론가>
2026-01-28
이도윤 나를 볼 수 없는 내 눈은 나에게 너무 멀고 너를 보기에는 너무 가깝다 그리움 오래 담아두려 하였으니 종내 눈물뿐이었다 맺힌 물방울 단숨에 신비하지만 눈은 무섭기도 하여 내 눈이 혹시 너에게 오래 남을까 걱정되었다 삶은 눈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부터 나는 나의 눈이 무서워졌다 너의 눈이 무서워졌다 …. 나의 눈은 나를 보지 못하나 너를 볼 수 있다. 아주 가까이에서도. 지금은 여기 없다 해도, 나의 눈에 보였던 너의 모습을 기억하고 그래서 그리워한다. 눈이 눈물을 흘리는 이유다. 너를 바라보는 나의 눈을 바라보는 너의 눈에 내 눈은 오래 남을 수 있겠다. 나를 모르지만 너를 그리워하는 나의 눈, 그리고 나의 눈을 판단하는 너의 눈의 교차와 교착 속에서, 삶은 이루어진다. 시인이 눈을 두려워하게 된 이유다. <문학평론가>
2026-01-26
태엽이 풀려 지금 정지한 벽시계 12에 멈춘 초침과 2에 멈춘 분침 사이로 벚꽃이 피어나더니 꽃잎이 휘날리고 벚꽃이 피면 뭘해요 어차피 내가 걸을 길이 없는데 울 수도 없어요 꽃잎이 너무 환해서 시계 속이 너무 어두워서 길이 없는 곳에서도 꽃잎은 날리죠 꼼짝없이 하얗게 갇혀 있네요 당신과 당신의 그림자 사이에 첫번째 편지와 두번째 편지 사이에 여기저기 있던 당신 내 시계에서 다 죽어버렸네요 ….. “태엽이 풀려” 벽시계가 정지하고, 시인의 시간도 정지한다. 정지된 시간의 사이에는, 벚꽃 지며 휘날리고 있다. 정지된 시간은 “당신과 당신의 그림자 사이”이기도 한 “첫번째 편지와 두번째 편지 사이”의, 환하게 피었다가 속절없이 사라져가는 시간. 그 시간 속에서 “여기저기 있던 당신”은 “다 죽어버”리고, 시인은 그 “너무 어두운” 사이 시간 속에 “하얗게 갇혀 있”다. “걸을 길도 없는” 꽃잎 흩날리는 곳에서. <문학평론가>
2026-01-25
김설희 금계국 기다란 목이 홀쭉하다 바람이 노랗게 흔들린다 잎들이 낱낱이 흔들린다 중심이 흔들린다 벌들이 꽃술에 앉는다 꽃술은 꽃의 중심에 있다 봄여름 가을, 중심은 꽃잎을 피워 언저리를 꾸민다 벌은 중심에 앉았다가 잠시 언저리를 스치고 또 다른 중심을 찾아간다 언저리를 보면 중심이 보인다 바람이 분다 금계국 그림자가 땅을 흔든다 그림자에는 중심에서 꿀을 훔치는 벌이 보이지 않는다 꽃보다 그림자가 크게 흔들린다 ….. 위의 시는 중심과 ‘언저리’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뒤집는다. 우리는 보통 중심이 언저리를 만든다고 생각하나 위의 시는 시 제목이 말해주듯이 “언저리가 중심을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는 벌들처럼 꽃의 중심을 찾아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하고 언저리는 스쳐 지나쳐버린다. 하지만 언저리를 통해서 진정한 중심으로 향하는 길을 알 수 있다. 언저리는 흔들림을 통해 드러난다. 흔들림은 그림자를 통해 드러난다. <문학평론가>
2026-01-22
달리는 기차를 본다 멈추지 않는 기차를 멈추지 않아 아무나 탈 수 없는 기차 그만 내리고 싶어도 내릴 수도 없는 기차 기차의 속도로 달려야만 탈 수 있다 내리고 싶을 때 내리는 자는 치명상을 입는다 세워주지 않는 저 기차에 우리 모두가 이미 타고 있다 탈 수 없는 기차를 이미 타고 있는 것은 악몽이다 기차가 멈추지 않고 달릴 수 있도록 몸을 던져 연료가 되는 자들이 따로 있을 뿐이다 기차를 세울 수 없는 것은 기차의 목적지는 기차 안에 있기 때문이다 목적지가 있는 사람은 기차를 탈 권리가 없다 기차의 목적지는 달리는 속도에 있다 …. “멈추지 않는 기차”, 이 기차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 성장의 속도에 열을 올리는 자본주의 세상을 의미할 테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이상, 우리 모두는 “아무나 탈 수 없는” 이 기차에 탈 수밖에 없고, 마음대로 내릴 수 없다. 기차에 탄 사람 대부분은 기차가 “달릴 수 있도록” 연료로 사용된다. 기차가 멈추지 않는 건, 기차의 속도, 그 빠름을 달성하는 것이 기차가 달리는 목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2026-01-21
미끈하게 삶아진 면발 위로 향긋한 멸치의 미소가 얹힌다 한 젓가락만으로도 뻥 뚫리듯 시원한 맛이 하루의 허기를 달래주었다 한 그릇 다 비우고 나면 속이 든든해지고 몸과 마음이 사르르 풀린다 중독된 욕망처럼 모르게 숨겨놓은 혀끝에 피어난 은밀한 연인 …… 사람에게 오묘한 즐거움을 주는 것이 맛있는 음식이다. 시인은 특히 멸치국수(인 것 같다)를 좋아하는 듯하다. 향긋하면서도 시원한 맛을 주는 국수. 시인은 이 맛에서 연애할 때의 “중독된 욕망”을 떠올린다. “몸과 마음이 사르르 풀”렸던 연애의 기억. 음식의 미각 세계는 개인마다 다 은밀한 감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연애의 은밀한 기쁨과 어울리는 것. 해서 시인은 국수 면발에서 연인의 미소를 떠올리기까지 한다. <문학평론가>
2026-01-20
망설임이 걸려 온다 끊지 못한 마음을 붙였다 떼고 다시 붙여 확인하는 포스트잇처럼 실수로 걸려 온 전화라면 실수에 감사하며 여보세요 혹시가 깃든 숨소리 중요한 순간에 딴 데 보는 이 버릇을 나는 여태 고치지 못하고 푸른곰팡이가 인류를 구원했듯 시도는 거듭되니까 내 역사 속으로 들어와 준다면 그 또한 감사하며 만날래? ….. 그리움을 품고 있지만 막상 연락하지 못하는 이가 있다. 옛 애인? 꼭 애인이 아니더라도, 오래 연락하지 않아 왔던 친구 역시 연락하기가 미안해진다. 아마 시인에게 전화를 건 이도 그랬을 터, 시인도 그러한 마음을 잘 알고 있어서 전화를 건 이가 연락하기 망설여왔다는 것을 직감하는 것이다. 혹여 실수로 건 전화라고 해도, 시인은 이에 감사한다. 시인 역시 만나고 싶었으나 정작 연락하지 못해왔던 터이니까. <문학평론가>
2026-01-19
대학 도서관에서 자리를 뜰 때 내 어깨너머를 흘낏 본다. 곱슬머리를 가진 남자가 나를 알은 척했다. 그의 얼굴은 쐐기모양으로 턱 가장자리에 수염이 나있다. 생생히 살아있는 눈이 금테안경 저쪽에서 웃고 있다. 아프리카인이다. 분명히 동아프리카 출신이다 - 에티오피아 또는 소말리아 그는 자신을 소개한다. 소말리아에서 왔다는 그는 나를 지나치면서 뭔가를 본 듯했다. 친근한 얼굴, 동료 아프리카인. 그는 내가 수단 출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최근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인류학,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을 전공했다. 나는 그에게 여행 잘하라는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몸을 돌려 나의 가족에게로 향했다. ……. 션 힐은 미국의 시인이자 현재 대학교수. 위의 시는 흑인인 시인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사유를 보여준다. 도서관에서 아프리카에서 온 유학생이 시인을 수단 출신 유학생으로 생각하고 반갑게 인사한다. “친근한 얼굴”을 가진 시인에게서, 인류학을 전공한 유학생은 인간의 깊은 “뭔가를 본” 것 같다. 그것은 동료애 아닐까. 시인이 그에게 인사하고 “나의 가족에게로 향”한 것은 그 동료애가 불러일으킨 것일 테다. <문학평론가>
2026-01-18
그대의 손등에 밤새 맴을 돌다 끝내 녹지 못한 눈송이들이 비로소 봄을 흔들어 겹겹 쌓인 마음 토해내다가, 가시 같은 햇살에 아프게 반짝이다가, 바람 불면 부는 대로 휘청이다가, 하얗게 질려 실핏줄 같은 울음 울먹이다가, 발 디딜 틈도 없이 우 쏟아져버리는 …… 4월이 오면 만나게 되는 “우 쏟아”지는 벚꽃. 시인은 이 벚꽃이 봄이 와도 “끝내 녹지 못한” 눈송이라고 생각한다. 그에게 그 눈송이는 밖으로 채 내보이지 못한 “실핏줄 같은 울음”, 즉 울먹임이다. 아직 사라지지 않은, “그대의 손등에” 여전히 맴돌고 있는 “하얗게 질”린 울먹임. 그 울먹임이 “겹겹 쌓인 마음 토해내”며 밖으로 터지는 시간이 있다. 저 벚꽃이 바람 “부는 대로 휘청”이며 떨어질 때가 그 시간이다. <문학평론가>
2026-01-15
쌀쌀하지만 가을은 윤택하여 사람들 노래하니 이슬이 쇠가 되고 구름이 구슬이 되네 오는 것과 거둠이 여유로워 음률에 오르고 맺어서 낳고 낳네 더위와 겨울이 이루어짐이 고르니 아름다운 산에 이르도다 가고 갈무리함에 세월이 빛나니 비와 서리는 물이 되어 산등성이를 적시네. …….. 고전적인 한시에서 느낄 수 있는 품격이 느껴지는 시. 지금은 겨울이기는 하나 지난 가을날의 풍광을 기억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시에 따르면 가을은 윤택함의 계절이다. 여름과 겨울 중간에서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이루어짐이 고”른 날씨의 계절. 하여 사람들은 가을을 노래하니, 음률이 세상에 흘러 구름도 구슬 같다. 한 해의 이루어짐에 다다른 가을의 산은 비와 서리로 젖어 아름답고, 세월은 빛난다. <문학평론가>
2026-01-14
언젠가 날 맞으러 오겠지, 날 낳고, 노래하며 돌봐주었던 죽은 사람이 내 가슴 사랑도 사라지고, 신념도 비켜 가겠지 노래들은 침묵 속으로 돌아오고 정신은 우주처럼 팽창하겠지 세상의 이면 같은 존재의 인내, 내 안에 영혼은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밝혀지겠지, 좀먹은 옷감처럼 나의 육신은 허물어지겠지 언젠가 날 거두러 오겠지, 날 낳고, 노래하며 돌봐주었던 죽은 사람이 …. 헝가리에서 국민 시인으로 추앙받는 어틸러. 그는 1937년 서른 두 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위의 시는 바로 그 1937년에 쓴 시. 시인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던 것 같다. 죽음은 어떻게 오는가. 자신을 낳고 “노래하며 돌봐주었던 죽은” 어머니가 자신을 거두러 오면서. 그땐 정신은 우주 바깥으로 흩날리고 “노래는 침묵 속으로 돌아”온다. “존재의 인내”를 해온 영혼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밝혀지는” 시간. <문학평론가>
2026-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