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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홍보판과 그라피티 독일여행기(下)

등록일 2024-07-03 18:39 게재일 2024-07-0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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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마침 우리가 갔던 때가 유럽의회 의원선거기간이었던가 보았다. 독일의 튀빙겐, 슈튜트가르트, 뮌헨,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와 비엔나,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도 선거홍보판이 거리 곳곳에 붙어있었다. 처음엔 하나같이 웃는 얼굴의 그 사진이 무엇인지 몰랐다.

동생이 선거홍보판이라고 했다. 모조지 2절 정도 크기의 빳빳한 종이에 선거에 출마한 사람의 얼굴이 크게 박혀있고, 당명과 당의 선거구호가 쓰여 있다고 했다. 대부분의 홍보판이 길가 가로등에 묶여 있었고, 어떤 곳엔 가로수 밑둥에 네 면으로 둘러 묶어붙인 것도 있었다. 우리나라의 현수막에 비해 훨씬 사이즈가 적었다.

평소에도 우리의 현수막을 도시의 흉물로 여겨 보기 싫어하는 나였기에 유럽의 홍보판은 훨씬 간소해서 도시의 미관을 그다지 해치지도 않는 것 같아 보기 좋았다. 몇 년 전 미국에서의 경험도 비슷했다. 어떤 집의 정원에 사람의 얼굴이 크게 박힌 피켓이 꽂혀져 있어 매우 궁금해했다가 그것이 선거홍보판이라는 걸 알고 놀란 적이 있었다.

개인의 정원에 저렇게 꽂아도 되는지, 허락을 받고 꽂은 것인지 궁금해 하는 내게 돌아온 대답은 더욱 놀라웠다. 그 정원의 주인이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자의 피켓을 자발적으로 꽂는다는 거였다.

선거는 겉으로는 조용하고 깨끗하게, 그러나 속으로는 치열하게 치러지는 것 같다는 인상을 두 대륙에서 받았다. 우리의 선거홍보물을 ‘도시의 붕대’라고 불리는 현수막에서 저런 좀 더 자그마한 부착물로 바꿀 수는 없을까 생각했다.

귀국 후 유럽의회 선거 후의 판세를 분석하는 뉴스기사를 봤다. 우리가 버스를 탈 때마다 봤던 튀빙겐의 그 환한 미소의 여성 후보는 당선되었을까 궁금하긴 하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도시의 미관을 심히 거슬리게 하는 것도 있었다. 그라피티(graffiti)였다. 그라피티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길거리 여기저기 벽면에 낙서처럼 그리거나 페인트를 분무기로 내뿜어서 그리는 그림이라고 한다.

공공장소의 벽면뿐만 아니라, 상가의 벽면, 대학 건물, 지하철역 벽면과 지하철과 기차의 표면에도 빈틈만 있으면 낙서가 그려져 있었다. 주로 검은색의 페인트로 크고 작은 글씨를 쓰거나 알 수 없는 그림을 그린 정도여서 그라피티를 예술이라 명명해야 한다면 이는 그림이 아닌 낙서였다. 어느 도시 건 어떤 건물이든 분별없이, 가차없이, 빼꼼한 데 없이, 함부로 휘갈겨 놓은 거니, 낙서였다.

독일의 그 고풍스러운 거리, 아기자기하고 예쁜 건물, 비엔나의 오래되고 아늑한 골목의 작은 가게 벽에까지 그려진 낙서엔 화가 치솟을 정도였다. 그라피티를 운운할 때면 예술이냐 범죄냐로 시작한다. 우리나라는 물론 대부분의 국가에선 엄연한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얼마 전 경복궁의 담장을 훼손한 낙서로 온 국민이 분노한 적도 있지 않은가.

최근에는 그라피티를 거리의 예술로 대접하여 공공장소의 개성있는 벽화로, 또는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그라피티까지도 있다고 들었다. 또는 사회정치적 메시지로도 인정하고 21세기의 문화현상으로 여기는 추세라고 한다. 하지만 정작 그 현장을 목도해보니 예술로 용인하긴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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