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에 박경리, 박완서, 양귀자, 강석경, 김형경, 권지예 등의 소설책은 따로 분류되어 있었다. 젊은 날 가난한 주머니 사정으로 200원 짜리 삼중당문고 소설로 허기를 달랬다. 그 후 소설책 정도는 내 맘대로 살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로워졌을 때, 마치 젊은 날의 그 허기와 갈증을 달래는 의식처럼 매달 한두 권씩 소설책을 샀다. 공부하다 머리가 지끈거리면 맛난 음식 몰래 탐식하듯 소설을 읽었다. 이 책들은 과거 연구실에 전공 관련한 책들이 빼곡한 서가에서는 한켠에 숨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 서재에서도 가장 눈에 잘 띄는 쪽에 문 앞에 배치해 두었다. 작년에 오랜만에 산 한강의 소설들도 함께 있었다. 공부 압박감이 없으니 이젠 내 마음대로 읽고 싶을 때 읽을 수 있으니 참 좋다. 이미 읽었던 것들이지만 뭐든 한 권을 뽑아 머리맡에 던져두고 잠들기 전, 또는 아침에 눈뜨자마자 몇 장씩 읽는다. 대부분의 소설은 몇 장씩이 아니라 거의 밤샘용이다. 마치 몰래 먹는 단맛의 유혹 같은 소설이기에 한 번 입속에 넣었다 하면 멈추기가 어렵다.
소설책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눈에 띄는 이문열의 ‘시인’이었다. 내가 주로 사 읽었던 소설이 여성소설가의 것이었는데 이문열이라? 꺼내 펼쳤더니 그의 친필 사인이 있었다. 맞다. 2009년 가을 영양 두들마을 그의 광산서사를 찾았다가 너른 서재에서 두어 시간 귀한 얘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소설의 주인공인 김삿갓의 시집도 서가를 뒤져 찾았다. 김삿갓의 시편들은 가끔씩 강의용으로 사용한 적이 있어 함께 읽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예전 읽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이문열의 문장은 참으로 찬탄하게 만든다. 곱씹고 줄치고 싶을 만큼 웅장한 문장들이었다. 허구와 사실이 뒤섞인 김삿갓의 파란만장한 서사를 ‘허구적 평전’으로 재구해낸 것은 바로 그의 필력이라는 확정을 새삼 하게 됐다. “세상에 대놓고 그 이유까지를 드러낼 수 없으되, 그는 또 자신에게 세상을 원망할 권리가 있다고 믿었다. 꾸짖고 욕할 권리가 있으며 조롱하고 이유할 권리가 있다고 믿었다. 그러자 그 믿음은 절로 그를 부패한 지배 계층이나 그 보조 계급보다는 자신과 같이 소외당한 계층 쪽으로 다가가게 했다. 거기 따라 그의 시도 당연히 변했다. 문예의 형식도 제도의 일부로 본 그는 먼저 형식 면에서 대담한 파격과 변조를 시작했다.” 이렇게 단 몇 개의 문장으로 김삿갓, 아니 희대의 천재시인 김병연을 요약해 버릴 정도로 이문열의 통찰은 잘 벼린 칼날 같았다. 실제 나도 김삿갓의 천재적 희시(戱詩) 속에 번뜩이는 익살과 풍자와 장난이 좋아 읽는데, 이렇게 단칼로 정리해 두는 이문열이었다.
이번에 읽으면서 새삼 알게 된 것, 그리고 무릎을 탁 치게 만든 건, 이 소설이 김병연의 ‘허구적 평전’일 뿐 아니라 이문열의 ‘위장된 자서(自敍)’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의 좌익사상과 행보로 연좌제에 묶여 사범대학을 졸업했어도 교사가 될 수 없기에 중퇴하고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좌절했던 젊은 날의 이문열이 김병연과 많이 겹쳤다. 조선의 시인으로 현대의 소설가로 우뚝한 둘이기에 더욱 닮았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