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을 사이에 두고 두 번이나 무지개를 보게 되니 마음이 적잖게 설렌다. 구룡포 앞바다에서 바다낚시를 하다가 무지개 떴단 소리에 화들짝 놀란다. 아주 짧게 내린 소나기가 주고 간 선물치고는 후한 녀석이다. 잡지도 못할 물고기를 노리다 하늘을 바라보지 못한 탐욕스러운 몸뚱이가 못내 아쉽고 성가시게 다가온다. 언제나 자유를 얻을 것인지?!
지난 목요일 경산에 갔다가 잠시 내린 상큼한 빗줄기 뒤로 무지개가 다시 나를 찾는다. 감출 수 없는 기쁨과 환희가 나의 전신을 감싼다. 휴대전화기를 서둘러 꺼내 무지개 영롱한 하늘을 향한다. 그리고 속으로 떠올린다. 고3 시절 체력장 시험 마치고 친구들과 찾은 청평에서 만난 쌍무지개의 화사한 풍광이 찬연하게 남아있는 것이다.
무지개를 가장 많이 본 곳은 어학 과정 다녔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수도 쾰른이었다. 분단 상황이었던 그곳에는 비가 자주 내렸고, 특히 여름철이면 무지개가 창궐(猖獗)하다시피 했다. 언젠가 쌍무지개 떴다는 반가운 소식을 같은 기숙사 사는 계명대 출신 부부에게 알렸다가, “그래서 뭐 어쩌라고요?!” 하는 퉁명한 답변에 머쓱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사람마다 정서가 다르고, 하루에도 몇 번이나 바뀌는 게 사람 마음이라는 걸 늦게 알았다. 하지만 그때 어처구니없기도 하고 속상했던 기억은 죽기 전까지 차마 나를 떠나지 않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이웃 사는 유학생이 알려주는 멋진 쌍무지개 소식을 그렇게 냉담하고 무신경하게 받아치는 인간의 속내가 어떤 것인지, 지금도 헤아리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이육사 시인의 단시 ‘절정’에 나오는 강철로 된 무지개는 정말 가슴 아프고 고통스럽게 다가온다. 서릿발 칼날 진 고원에서 시인이 만난 무지개 재료는 ‘강철’이었다. 일곱 빛깔이 아니라, 회색 강철의 부자연스럽고 냉정한 무지개가 걸린 고원 지대의 어디선가 육사는 절망의 정점, 혹은 절정의 절망과 한탄을 날려 보내야만 했을 터였다.
더욱이 육사가 만난 무지개는 한겨울에 뜬, 상상 속의 무지개였으니, 그 심사가 어땠을까 돌이키면 송구한 마음이 앞선다. 식민지 조선의 문인들이 앞다투어 시와 소설 출간하던 시절에 육사는 절필을 선언하고, 독립운동에 매진했던 시절. 그가 군자금을 안고 설한풍(雪寒風) 뚫고 고원 넘어가며 느꼈을 절해고도(絶海孤島)의 적막함을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진다.
한순간에 스러질 운명이되, 순간의 아름다움으로 인간의 영혼을 뒤흔드는 무지개와 아침이슬과 한단지몽과 벽력같은 우레, 이와 같은 운명적인 허망을 육사는 정녕 알았던 것일까?! 육사는 북경 감옥에서 한겨울에 소리도 없이 스러졌다. 1944년 1월 16일의 일이다. 그날 북경에는 강철 무지개가 떠올랐을까?! 혹은 조국광복과 해방의 기막힌 무지개가 떴을까?!
요즘 건국절이란 전대미문의 용어가 국민을 현혹하고 ‘중일마’라는 듣보잡 어휘가 횡행한다. ‘중요한 것은 (일본과) 일본인의 마음’이라니, 자다가 벌떡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본 무지개가 진정 헛것이었는지, 혼잣말로 묻는다. “당신들은 어느 나라 사람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