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 뜨거운 여름을 지나왔다. 아직 가을이라 하기엔 미흡하지만, 가끔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추석이 코앞이라고 말해준다. 추석 연휴가 5일이다. 조상님들 산소를 돌보고, 친척들과 만나 가져온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고 정성스럽게 마련한 음식을 나누는 기쁜 명절이다. 하늘 저쪽에서 구름 공장이 열심히 뭉게구름을 만들어 보내온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가까운 곳에 나들이하기에 좋은 날씨다. 누렇게 익어가는 들도 즐기고, 오래전 함께 즐겼던 영화도 곱씹어보는 추석 명절이 되길 바라며, 영화 네 편을 골라 보았다.
모든 위조품 속에는 진품의 미덕이 숨어 있다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베스트 오퍼’
시네마 천국 감독 작품이다. 36년 전 개봉한 ‘시네마 천국’은 지금도 사람들의 최애 작품을 꼽을 때마다 등장한다. ‘베스트 오퍼’는 아날로그 필름 작품만 고집하던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첫 번째 디지털 영화이다. 영화 제목 ‘베스트 오퍼’는 경매가 최고액을 의미한다. 주인공은 미술품을 보는 남다른 안목으로 당대 최고의 경매사다.
하지만 심각한 결벽증으로 사람들과 소통이 힘들다. 60이 넘도록 사랑하는 이 하나 없이 경매를 도와주는 친구 한 명뿐이다. 그와 함께 부당한 방법으로 여인들의 초상화를 낮은 값에 경매받아 혼자만의 비밀의 방에 모아두고 감상한다.
그 앞에 광장공포증을 가진 여자가 나타난다. 그때부터 주인공 올드만의 인생은 달라진다. 처음 사랑에 빠진다. 영화음악은 거장 엔니오 모리꼬네 작품이다. 모든 위조품 속에는 진품의 미덕이 숨어 있다라는 대사가 주인공의 첫사랑이 진짜 사랑으로 남길 바라는 마음을 대변한다. 그의 비밀의 방에 가득한 여인들의 초상화가 이 영화의 압권이다. 진정한 친구 한 사람이라도 있었더라면 올드만의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다.
속고 다시 속이는, 거짓말 게임의 끝은 진실?
빌 콘돈 감독의 ‘굿 라이어’
명품 연기의 주연, 연기경력 50년이 넘는 여주인공의 주체적인 캐릭터.
부유한 미망인 ‘베티(헬렌 미렌)’는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에서‘로이(이안 맥켈런)’를 만나고, 두 사람은 서로를 의지하며 좋은 관계를 만들어나간다. 하지만 사실 로이는 베티의 돈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접근했던 것.
이를 모르는 베티는 로이가 제안한대로 공동 계좌를 만들어 본인의 재산과 로이의 재산을 합하는 데 동의하고, 두 사람은 베를린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 곳에서 베티는 로이의 정체를 알게 된다. 미녀와 야수와 위대한 쇼맨을 만든 빌 콘돈 감독이 만들었다.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그는 인간의 심리 묘사가 뛰어나다. 이 영화는 반전의 반전이 재밌다.
이야기의 처음 시작은 2차 세계 대전 독일이다. 거짓말이 제일 쉬워 거짓말로 사람들의 돈을 갈취하며 살아가는 로이, 마지막 장면에서 거짓말을 할 때마다 자신의 돈이 사라지니 그제야 진실을 말한다. 스릴러 장르라지만 남녀 연기자의 내면 연기를 보는 맛으로 영화를 즐기면 더 재밌을 것이다.
쉬워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삶의 철학을 묻다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앙: 단팥 인생 이야기’
납작하게 구운 반죽 사이에 팥소를 넣어 만드는 전통 단팥빵 ‘도라야키’를 파는 작은 가게.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가게 주인 ‘센타로’에게 ‘도쿠에’라는 할머니가 찾아온다. ‘마음을 담아’ 만든다는 할머니의 단팥 덕에 ‘도라야키’는 날로 인기를 얻고 가게 주인 ‘센타로’의 얼굴도 밝아진다.
하지만 단골 소녀의 실수로 할머니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예상치 못한 이별의 순간이 찾아오는데…. “당신에게는, 아직 못다 한 일이 남아 있습니까”
제목이 팥 이야기인 만큼 도라야키 안에 들어갈 팥소를 만드는 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여준다.
팥에서 상태가 안좋은 것을 골라내야하고, 전날 미리 물에 불려놓는다. 팥에서 색이 우러나온 것도 살핀다. 팥을 삶고 솥에 귀를 가져가 소리를 듣고는 시간이 됐다는 듯 건져 차가운 물로 헹궈낸다. 제대로 헹구지 않으면 떫은맛이 남는다. 냄비에 다시 넣어 물을 넉넉히 부어 삶는다. 서서히 끓기를 기다리다 김의 냄새가 달라졌다며 팥 상태를 살피고 뚜껑을 닫아 뜸을 들인다.
복잡하네요 하는 남자 주인공 말에 극진히 모셔야 한다고 할머니가 말한다. 손님을 모신다는 말이냐 하고 묻자 할머니는 팥들이라고 대답한다. 밭에서 힘들게 여기까지 왔으니까 하고 살짝 조신다.
뜸이 든 팥 냄비에 팥이 으스러지지 않게 조심히 수도꼭지에서 아주 약하게 물을 흘려 냄비에 팥물이 투명해질 때까지 기다린다. 그때마다 할머니는 팥을 자세히 사랑스럽게 들여다본다. 건져낸 팥에다 당을 넣어 섞은 후 또 기다린다.
왜 기다리냐고 남자가 묻자 할머니는 갑자기 끓이는 건 실례라고 하며 팥이 당과 친해지길 기다려주자고 한다. 마치 맞선과 같으니 뒷일은 처녀 총각에게 맡기자 한다. 얼마나 기다려요 하니 2시간이란다. 그 후 팥이 으깨지지 않게 서서히 저으면서 뭉근히 달여 불을 줄인 후 물엿을 넣어 완성한다.
팥알이 한알한알 제 모습 그대로 간직한 맛있는 앙이 완성되었다.
이런 맛은 처음이라는 가게 주인 남자, 이제껏 도라야키를 한 개 다 먹은 적이 없다고 한다.
팥을 정성스럽게 만들면서 늘 무표정이던 그의 표정에도 웃음이 살아난다. 살아가는 것도 팥을 삶는 것과 같다라고 감독이 우리에게 일러준다.
해맑은 동심의 세계 그린 명작 애니메이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이웃집 토토로’
경주 천년의 정원 외나무다리에서 찍은 영상을 sns에 올리니 지인이 토토로의 숲같다고 좋아했다. 오랜만에 ‘이웃집 토토로’를 돌려보았다.
주인공 사츠키와 메이 자매, 음력 5월을 뜻하는 사츠키. 나이는 12살. 소학교(초등학교) 6학년이다. 쿠사카베 가의 장녀로, 메이의 언니. 씩씩하고 밝은 성격을 가진 단발머리의 소녀다. 비가 몹시 쏟아지던 날 버스 정류장에서 아빠를 기다리다가 토토로를 만나게 된다.
동생 이름의 유래는 영어로 5월을 뜻하는 메이(May). 나이는 4살. 사츠키의 여동생으로, 아빠와 언니를 잘 따른다. 숲에서 놀다가 조그맣고 이상한 동물을 발견하고 뒤를 쫓아 숲속으로 들어가는데, 그곳에서 도토리나무의 요정 토토로를 만난다. 사실 메이는 원안에는 없던 캐릭터였다.
당초 기획 단계에서는 주인공은 사츠키 단독으로 하려 했으나 주인공의 배역을 둘로 나누어서 동생 캐릭터인 메이가 추가로 만들어지게 된다. 작품의 성격상 외동딸보다는 자매나 남매로 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두 소녀가 뛰어다니다 큰 나무를 가리키자 아빠는 녹나무라고 알려준다. 녹나무 파수꾼이란 일본 소설이 떠오른다.
이 영화로 감독은 일본의 아름다운 풍경을 알리고 싶었다고 한다. 우리 지역에도 훌륭한 숲이 많다. 경북수목원,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등등 추석 연휴에 가족이 함께 산책하기 좋은 숲이다.
/김순희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