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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담배’ 교복 입고도 산다 규제 공백에 10대 흡연 무방비

단정민기자
등록일 2024-09-25 20:06 게재일 2024-09-26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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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슈퍼마켓 신분 확인 안해… 무인매장 등 타인 신분증 구매<br/>담배 아닌 공산품 분류 ‘규제 사각지대’… “신분 확인 강화해야”

“XX웨이브(전자담배) 하나 주세요”

고등학교 하교 시간에 맞춰 기자가 직접 교복을 입고 포항의 한 편의점을 방문했다. 점주는 신분증을 요구하며, 학생에게는 담배를 팔 수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두 번째로 방문한 편의점 역시 반응은 같았다. 그러나 근처 슈퍼마켓에서의 상황은 달랐다. 길모퉁이 담배라는 간판이 걸린 가게에 들어가 담배를 구매하는 데 걸린 시간은 5초 남짓. 점주는 교복을 위아래로 한번 훑어보고는 신분증 요구 없이 전자담배를 건넸다.

24시 무인 전자담배 매장은 어떨까? 매장 자판기에서 전자담배를 구매하려면 제품 선택 후 신분증을 인증 한 뒤 결제 버튼을 눌러야 한다. 그러나 본인 대조 절차가 필요 없어 타인의 신분증으로도 충분히 구매를 할 수 있었다. 가게는 ‘미성년자 출입 금지’라는 문구와 함께 CCTV가 설치되어 있을 뿐, 청소년 출입을 막는 별도의 장치는 없었다.

또한, 샤프심, 볼펜, USB 등과 유사한 디자인으로 제작된 전자담배는 필통에 쉽게 숨길 수 있어 눈에 잘 띄지 않으며, 다양한 과일 향을 첨가해 담배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기 때문에 학교에서도 적발이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듯 진입장벽이 낮은 탓에 전자담배를 찾는 청소년은 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 질병관리청의 ‘청소년 건강행태 조사’를 살펴보면 청소년(중1∼고3) 흡연율은 2020년 4.4%에서 지난해 4.2%로 감소한 반면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률은 1.9%에서 3.1%로 증가했다.

질병관리청이 지난 7월 발표한 ‘청소년건강패널조사’에 따르면 흡연 청소년(초6∼고1) 69.5%가 가향 담배를 통해 처음 흡연을 접하는데, 이 중 84.8%가 액상형 전자담배를 택했다고 답했다. 액상형 전자담배로 흡연을 시작한 청소년 중 60.3%는 현재 궐련(담뱃잎을 썰어 종이로 말아 만든 작은 담배)을 주로 피우는 것으로 파악됐다.

문제는 이러한 액상형 전자담배가 현행법상 일반 담배로 분류되지 않아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전자담배의 경우 경고 그림이나 유해 문구 표기의 의무가 적용되지 않으며, 담배 소비세와 같은 부담금도 부과되지 않는다. 담배사업법상 ‘연초’ 잎이 들어간 담배는 온라인 및 비대면 판매가 금지되지만, ‘합성 니코틴’을 사용하는 액상형 전자담배는 ‘공산품’으로 분류돼 온라인 판매도 가능하다.

유럽연합(EU)은 지난 17일(현지 시간) 27개 모든 회원국에 ‘금연 환경에 대한 권고’ 개정안을 발표했다. 최근 유럽 전역에서 전자담배를 사용하는 청소년을 포함한 젊은 층이 늘어나면서 우려가 제기된 데 따른 조처로 풀이된다. 미국 역시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전자담배 판매를 금지하고, 특히 가향 전자담배의 유통을 제한하는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신분증 확인 절차 강화 외에도, 전자담배에 대한 온라인 판매를 제한하고, 무인 매장에서의 본인 대조 절차를 더욱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김성희 포항 남구보건소 금연클리닉 금연상담사는“성장기에 흡연을 하게 되면 키 성장이 느려질 뿐 아니라 폐 용적과 폐포 형성을 방해해 호흡기 건강도 해친다. 더불어 폐암을 포함한 다양한 암의 발병 위험이 크게 증가하게 된다”며 “청소년들이 전자담배를 쉽게 구매하지 못하도록 신분 확인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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