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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잣돈, 이만 원

등록일 2024-09-29 18:37 게재일 2024-09-3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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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 원.

이렇게 쓸쓸한 장례식은 처음이다. 그녀의 마지막 가는 길은 뼈만 남은 앙상한 몸만큼이나 초라했다. 구순의 친정아버지와 고등학생 아들, 그리고 우리 부부가 그녀를 배웅했다.

나는 그녀를 학부모로 만났다. 처음 아이를 학원에 데리고 오는 날, 그녀는 자신의 가정사를 이야기했다. 아이의 아버지가 다른 여인을 품으면서 그녀는 아이를 임신한 상태로 시댁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가난한 친정으로 들어와서 팔삭둥이로 아이를 낳았다는 이야기를 깔깔대며 했다. 끄떡없이 잘 살 수 있다는 표현을 하는 것으로 나는 느꼈다.

한 달마다 닥쳐오는 아이의 학원비는 그녀에게 부담이었다. 그녀의 사정을 알았던 나는 반값으로 내려주었다. 그녀는 아이에 대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거나 학교 선생님들에 대한 섭섭함이나 힘든 일이 있을 땐 늘 학원으로 찾아왔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를 언니라고 부르며 많이 들어주려고 애를 썼다. 그런 그녀가 가슴에 멍울이 잡힌다고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그녀는 자신보다 아이와 연로한 부모님을 걱정했다. 힘겨운 치료 과정에서도 그녀는 스스로의 삶을 늘 응원했다. 그것도 잠시였다. 다시 찾은 병원에서 그녀는 재발이 되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뼈와 간, 폐까지 전이가 되었다고 했다. 손을 쓸 틈도 없이 그녀는 1년이라는 유효기간을 받아 들었다. 머릿속에 아는 단어가 모두 지워진 듯 아무런 말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녀의 암덩어리는 피할 수 없는 연기처럼 순식간에 온 몸으로 퍼져갔다. 열이 나서 춥고 균형을 잡지 못해 넘어지면서 온 몸은 멍투성이가 되어 갔다.

그 시기에 나는 자궁 수술을 받다가 의료 사고로 대학 병원에 이송되었다. 30분의 골든타임을 살려 나는 위험에서 벗어났다. 못 볼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많은 사람들이 병원을 다녀갔다. 하지만 그녀의 방문은 의외였다. 나를 보며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더 크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꽃샘추위로 바깥 날씨가 예사롭지 않았을 텐데 그녀는 자신의 몸도 제대로 못 가누면서 버스로 한 시간이나 걸리는 이 곳을 찾아왔다. 살이라고는 없는 앙상한 그녀는 은사시 떨듯 하염없이 떨었다.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온 그녀를 보고 나도 울었다.

10분 후 그녀는 일어섰다. 태워 주겠다는 남편의 제의를 마다했다. 택시라도 태워 주겠다는 말에도 화를 냈다. 혼자서 갈 수 있다며 돌아서면서 무조건 받으라며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손사래를 치는 우리에게 ‘내 마음이니 받아 주세요’ 하며 돌아섰다. 봉투를 열었다. 속에는 그녀의 지갑 속에서 얼마나 오랜 시간 접혀 있었던지 칼처럼 날카롭고 공기라곤 느낄 수 없이 납작하고 빳빳한 만 원짜리 두 개가 2번 접혀 있었다. 형편이 어려웠던 그녀가 아끼고 아끼며 차마 쓰지 못했던 돈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니 기꺼이 내어준 그녀의 마음이 뜨겁게 다가와 견딜 수가 없었다. 누구에게는 커피 두 잔으로 써 버릴 작은 금액일 수 있겠으나 그녀에게는 너무나 큰 금액이었다. 한 달 만에 나는 퇴원을 했고 조금씩 회복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건강은 날로 악화되었다. 걱정이 되어 그녀의 현관문을 두드리려 하면 두려움이 먼저 다가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내 발걸음을 자꾸 밀어냈다. 그녀는 점점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전화가 왔다. 그녀의 아버지였다. 떨리지도 않는 담담한 목소리였다.

“가뿟심더”

김경아 작가
김경아 작가

병원에는 아무도 없었다. 빈소도 없었다. 올 사람도 없다며 할아버지는 입관 후 다음 날 바로 발인을 했다. 절차와 행정적인 부분을 할 수 없었던 할아버지를 대신해 나는 분주했다.

입관에는 할아버지와 아들, 교회 목사님과 내가 함께 했다. 가족이라고는 한 명도 오지 않았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 깊이 알 수는 없었지만 그녀의 마지막 길은 외로웠다. 수의를 입고 있는 그녀는 편안한 표정이었다. 말이 없던 아들은 어깨만 들썩일 뿐 제 엄마의 주검 앞에서 목 내어 울지도 못했다. 나는 그녀가 가는 길에 노잣돈으로 차마 쓸 수 없었던 이만 원을 함께 보냈다. 저 세상에서 그녀는 또 누군가에게 자신의 따뜻한 마음을 나눠주며 살 것이라 믿었다. 납골당에 그녀를 두고 돌아서는데 할아버지가 내 손을 잡았다.

“선생님 덕분에 우리 애미가 행복했다 카대요. 유일하게 인간 대접 해 준 사람이라 카면서 고맙다고 꼭 전해주라 하대요. 고맙심더”

그녀의 환한 웃음이 떠올라 자꾸만 눈이 시려왔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넓고 넓은 이만 원의 크기만큼 그녀의 가족들을 돌보겠노라 약속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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