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와 고금리·고물가 속에 자영업자 들이 폐업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경북지역의 대표 도시 포항도 예외는 아니다. 코로나 엔데믹 이후에도 매출이 급감해 폐업을 하거나 명의이전을 하는 점포가 속출하고 있다. 포항 자영업자 폐업률이 지난해 기준 20%가 넘고 폐업한 이들은 재취업을 하지 않고 노동시장을 떠나 ‘비경제활동인구’(자발적 실업)가 되었다. 본지는 포항시의 주요 상권에서 일하고 있는 소상공인들을 직접 만나 참담한 처지에 몰린 자영업자들의 현실이 어떤지 들여다봤다.
“너무 올라버린 물가… 시장엔 파리만 날려”
죽도시장 상인들…
지난 25일 평일 낮, 무더위가 한풀 꺾인 포항 죽도시장은 한산했다. 그중 가게에 팔 것을 다 못 채운 수산물 가게들이 눈에 띄었다. 상인들이 호객행위를 했지만 비싼 물가 탓에 손님들의 지갑은 도통 열리지 않았다. 인근 수산물 가게를 운영하는 김모(62)씨는 “문어가 잘 잡히지 않아 가격이 올랐다”며 가게를 다 못 채운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문어값은 선물용, 포장용은 ㎏당 6만 원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대목에는 하루에 (가게 전체)수백만 원을 벌어 제법 쏠쏠하게 수익을 냈지만, 요즘 평일엔 100만원을 웃돌면 다행일 정도”라며 “문어는 하루 평균 여섯 마리 정도 나가는 정도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둘러본 수산물 거리는 오지 않는 손님만을 기다리는 상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수산물 거리를 지나서니 파리를 쫓아내고 있는 건어물 가게가 보였다. 건어물 가게 사장님 양모(62)씨는 “지난 여름 폭염으로 손님들이 가게를 찾지 않았다”며 “추석에도 더운 날씨에 손님들이 많이 찾아오지 않았다”고 하소연했다. 작년과 올해 경기를 비교해 물으니 양씨는“작년보다 올해가 더 힘들다”며 재차 어두운 시장 경기를 강조했다. “하루 매출은 40만~70만 원 정도로 왔다 갔다 한다”면서“그러나 남는 건 10% 뿐”이라고 한탄했다. 한 개 팔아야 마진이 1000원 남는다는 판매용 쥐포를 손에 쥔 양씨는“마진 10%로 자릿세 내니 남는 게 없다”고 넋두리했다.
시장 깊숙이 들어가자, 채소가게들이 줄지어 있었다. 채소가게를 운영하는 최모(68)씨는 요즘 경기를 묻자 “작년보다 좋지 않다”며 “소매 장사로는 살아남기 힘들다”고 이야기했다. 최씨는 배춧값이 너무 올라 힘들다며 “배추는 도매로도 사러 오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기가 좋을 땐 일평균 60만~70만 원을 벌어 25% 정도의 마진을 남겼지만, 지금은 일평균 40만 원을 벌어 20%의 마진을 남긴다”고 토로했다. 최씨는 “폐업하려 해도 400만 원이 훌쩍 넘는 폐업비가 부담스러워 폐업도 못하고 있다”고 했다.
죽도시장의 중심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람들이 붐벼 어깨가 부딪히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중심거리에서 과일가게를 하는 박모(44)씨는“정확히 작년의 1/3을 벌고 있다”며 재고가 가득 쌓인 과일 진열대를 보여줬다.
“빈 점포 수두룩… 한 달 100만원도 못 벌어”
중앙상가 상인들…
포항 시내의 중앙동 상권도 상황이 심각하다. 2023년 기준 중앙상가의 점포 수는 약 870곳이었으나, 그중 42%에 해당하는 360곳이 문을 닫았다. 현재 1년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폐점한 점포 수가 작년보다 더 늘어난 것이 눈에 띈다.
“이제 갈 데까지 간 거죠”
지난 26일 중앙동 도로변에서 김밥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권 모씨(62)는 흰 노트에 매출을 손으로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날 날짜 아래에는 아무런 기록도 남아 있지 않았다. 권 씨는 장사를 시작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올해처럼 장사가 안된 적은 없었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도 장사가 잘될 때는 종업원이 9명이나 있었어요. 야간 당직 근무자도 있었고, 배달 기사도 2명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인원을 줄이고 줄여서 2명이 일하고 있어요. 그런데도 일손이 남아요”
권 씨의 가게임대료는 월 150만 원이지만, 월 매출이 200만 원을 넘기는 달은 드물다. 그마저도 인건비, 재료비, 수수료 등을 제하고 나면 매달 적자라고 한다.
권 씨는 적자인 매출을 대출로 메우고 있다며 올라갈 기세가 보이지 않는 경기 상황에 이미 체념한 듯 보였다.
중앙동 시내 메인 거리에 있는 카페도 상황은 비슷했다.
“추석 때 가게를 내놨어요. 도저히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요”
영업을 시작한 지 2년 3개월 된 권대혁(41) 씨는 고민 끝에 추석에 가게를 내놨다. 권 씨는 원래 하던 맥주 가게가 코로나로 큰 타격을 받자 조금 더 순수익이 많이 나는 카페로 업종을 바꿨다고 했다. 하지만 권 씨는 개업을 한 지 2년이 된 지금 최근 작년에 비해 매출액이 30~40% 떨어지는 것을 보고 이내 가게를 내놨다.
그는 “오히려 코로나가 끝나고 난 1년 뒤부터 더 수익이 나지 않아요. 마진이 2년 전만 해도 350만 원까지 나왔는데 고금리다 뭐다 하면서 경기 상황이 급격하게 안 좋아지더니 지금은 겨우 100만 원을 넘겨요”라며 쓸쓸한 소회를 드러냈다.
권 씨가 운영하는 가게임대료는 80만 원으로 적어도 20팀 이상은 방문해야 수익이 난다. 하지만 10팀도 안 오는 날도 있다.
“전기세 조차 부담… 알바생도 못 써요”
편의점 점주들…
지난 27일 포항시 북구 대신동에서 만난 CU 편의점주 최 모씨(53).
그녀에게 있어 편의점 운영은 희망찬 자영업의 시작이었지만, 지금은 고난의 연속이다.
최 씨는 “2년을 운영했지만 한 달에 100만 원도 못 벌고 있는 상황에서 인건비를 쓰는 건 불가능하다”며 “알바생조차 고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토로했다.
그녀는 코로나19 이후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편의점 사정은 오히려 악화됐다. 최 씨는 “코로나 때는 손님들이 생필품과 간편식을 많이 사 가곤 했는데, 이제는 그런 손님도 사라졌다”며 “편의점 구색은 갖춰야 하는데, 그러다 보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됐다”고 하소연했다.
세븐일레븐을 인수한 지 올해로 4년 차가 된 정 모씨(65) 역시 알바생은 꿈도 꾸지 못한다. 그는 “점주인 나도 하루 일당을 못 가져가는 상황이다. 편의점을 인수하던 4년 전과 매출을 비교했을 때 40% 정도 떨어졌다”고 말했다.
하루 동안 편의점을 몇 명이나 찾느냐고 묻자 “낮 동안 한 명의 손님이 왔다 갔다. 300원짜리 사탕 하나를 사 가며 카드를 내밀었다”며 기막혀했다.
정 씨는 “하루 동안 팔지 못하면 폐기해야 하는 물건들도 많다. 도시락의 경우 절반 정도 폐기한다. 그렇다고 물건을 안 들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보니 고민이 많다”며 “내가 편의점 장사를 선택했으니, 후회도 내 몫”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포항시 북구 신흥동에서 17년째 GS 편의점을 운영 중인 임 모씨(57)는 가장 큰 걱정거리 중 하나로 물가 상승을 꼽았다. 그녀는 “물가가 너무 많이 올랐다. 소비자들도 이제는 예전처럼 돈을 쓰지 않는다. 그러니 장사도 당연히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며 “코로나 시기보다 현재가 더 힘들다. 임대료 120만 원이나 나오는데 수익은 없으니 전기세 내는 것조차 부담스럽다”고 털어놨다.
임 씨는 “지금 상황에서는 장사로는 더 이상 답이 없는 것 같다. 물가가 오르고 경기가 안 좋아지면 자영업자들은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정부가 물가 안정 정책과 자영업자 지원책을 하루빨리 마련해주길 간절히 바란다”며 “특히 카드 수수료 부담 완화와 같은 실질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김채은기자gkacodms1@kbmaeil.com
/성지영 인턴기자 thepen02@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