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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이 내게 보내준 선물

등록일 2024-10-14 19:30 게재일 2024-10-1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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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10일 밤에 멀리 스웨덴에서 들려온 소식은 한국문학의 의미를 단번에 바꾸어 버렸다. 한강의 수상 소식은 그 한 사람 작가의 영예가 아니었다. 그것이 한국문학 전체의 밝은 빛임을 누구나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첫날, 다음날에 사람들은 오로지 기쁨뿐이었다고 생각된다. 이틀째 되는 날 ‘조선일보’1면은 “‘한강 신드롬’ 대한민국이 종일 웃었다”였다. 한강의 노벨문학상이 한국문학만의 기쁨이 아니었다는 인식을 아주 명징하게 표현한 것이었다.

언론사의 기자분들, 그리고 문학인들과 전화로, 문자로,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하룻새 달라진 한국문학의 색조를 실감할 수 있었다. 나부터 벌써 다음 날 있었던 ‘한국현대문학사’ 수업을, 한강의 ‘채식주의자’와 노벨문학상으로 ‘긴급 편성’을 해야 했다. 출생률 저하로 한국어 인구가 바싹 줄어들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에 짓눌려온 한국문학을 앞으로 계속해서 공부해도 좋다는 푸른 신호를 받아든 것 같았다. 어두운 복도에 형광등이 일제히 켜진 것 같은 느낌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반가운 소식을 받아들고, 그러나 동시에 나는 어떤 착잡한 심경에도 사로잡힌 것이었다. 기쁘지 않아서가 아니요, 너무나 기쁜 가운데 심중에 스며드는 한 가닥 세차지도 않은 쓸쓸한 바람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었을까?

과연 나의 문학은 어떻게 되고 있는 것일까?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결코 부러워 해서도, 시샘해서도 아닌, 부드러운 회색빛의 마음의 어스름은 나 자신이 걸어온 문학의 길을 찬찬히 한번 되돌아보라고 주문하고 있었다.

명함을 가진 사람의 ‘논평’이 필요한 라디오나 티비에서 나를 부르기도 했고, 즐거운 마음으로 의미 부여하기도 했다. 해남에서는 카프카와 관련해서도 한강 이야기를 했고, 불광동에서도 작가 이호철 선생의 행로를 말하며 다시 노벨문학상 이야기를 했다. 김유정문학촌의 발표를 앞두고도 한강의 ‘채식주의’는 김유정과 크로포트킨의 ‘사랑의 투쟁’과도 비교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한강 문학의 앞뒤 사정을 생각해 보고, 그것이 한국현대문학의 큰 나무의 소산일 수 있음을 명료하게 인식하면서도, 나는 계속해서, 나의 문학은?, 하고 자문하고 있었다.

문학인들은 한강으로 인해 자신의 길이, 선택이 나쁜 것은 아니었음을 다시 한번, 새삼스럽게 납득할 수 있었다. 나 자신이 바로 그러했다. 하지만 그러면서 나는 나 자신에게 계속해서 물었다. 잘은 보이지 않은 한 줄기 희미한 생각의 빛을 쫓아 시선을 먼 앞으로 던져 보고 있었다.

한강이 내게 준 선물은 바로 이 질문 그것에 있었다.

나는 짧은 며칠 사이에 지난 십 년 동안 생각해 본 것보다 더 많이 나 자신의 문학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내게 있어 시는 무엇이었나? 소설은 무엇이었나? 어떤 궁극의 질문을 가지고 있었나?

얼마나 좋은 일인가? 급한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서서 생각해 볼 수 있음은. 걸어온 길과 남은 길을 ‘측량’할 수 있음은.

사위가 고요하고도 기쁜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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