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노벨문학상에 소설가 한강… 한국 작가 최초 수상.”
지난 주 10일 저녁, TV를 무심히 보고 있는데, 자막으로 뜬 뉴스 속보를 보고 화들짝 놀라면서 나도 몰래 크게 손뼉을 쳤다. 옆에 있는 손자가 깜짝 놀라 나를 쳐다보더니, 저도 일단 같이 박수를 쳐준다. 그러면서 묻는다. 할머니 왜? 할머니 왜요? 우리나라의 한강이라는 소설가가 세계에서 가장 큰 상을 받는대. 우리나라 소설가가, 그것도 여성이, 또 그것도 젊은 나이의 소설가가…. 흥분된 마음에 믿기지가 않아 스마트폰으로 검색 확인했다. 몇 개의 속보가 같은 문장으로 떴다. 그 속보 아래에 생전 해보지도 않은 댓글을 달았다.
“오늘 같이 기쁜 날이 또 있을까요?” 그날 밤 위덕대 이정희 교수와도 문학을 전공하는 교수로서의 기쁨을 문자를 주고받으며 설레는 밤을 잠 못 이루며 보냈다. 오늘은 아주 오랜만에, 정말 몇 년만에 형님이 전화를 주셨다. 올해 85세의 손윗시누님이시다.
깜짝 놀라 받으니 하시는 말씀이다. “한강 소설가가 노벨상을 받는다니 참 얼마나 훌륭하고 장한 일인지, 자네도 좋제? 문학 공부하는 자네가 생각나서 전화해 보네….” 이렇게 우리나라 모든 사람이 모처럼의 기쁜 소식에 한마음이 되었나 싶다. 누군가는 벼락같다고 하고, 누군가는 지구가 흔들렸다고 하고 심지어 아버지인 한승원 작가는 “세상이 꼭 발칵 뒤집어진 것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무어라 더 표현할 말이 없을 정도로 기쁘고 떨린 가슴이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진정이 안 된다. 온 나라가 한강을 알고 많은 세계인이 그의 소설을 읽으려 할 것이니 어찌 흥분되지 않으랴. 그러면서도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에 얽힌 작은 에피소드를 떠올리니 몹시 무안해진다.
2017년 여름, 미국의 브링검영대학교에 초빙교수로 가게 되었다. 연구 비자를 얻기 위해서는 미국대사관에서 면접을 봐야했다. 나는 영어를 잘 못해 비자를 못 받을까 조마조마했다.
대기실엔 2~30명이 넘는 면접 대기자가 있었고, 여러 칸의 창구 너머엔 남녀 면접관들이 있었다. 여성면접관과 얘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초조한 마음을 누르고 있었다. 내 이름이 불렸고, 바람대로 여성면접관 앞으로 갈 수 있었다.
인사하고, 내가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고 미리 얘기했다. 그녀는 웃으면서, 전공을 물었다. 한국문학, 고전문학이라고 대답했더니 그녀는 대뜸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순간적으로 무슨 말이지? 당황해서 되물었고, 한강의 소설을 얘기하는 걸로 곧 알아차렸다. 2016년, 영국에서 맨부커 국제상을 수상한 그 책을 아는 것 같았다.
그즈음 나는 책을 사긴 했지만 내 취향이 아니라 다 읽진 못한 상태였다. 어깨를 으쓱하며 몇 페이지만 읽었고 그 이유는 재미없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웃는 얼굴로 요란하게 손을 저어가며 꽤나 많은 얘기를 했다. 다는 못 알아들었지만 분명히 들린 말, 똑똑히 기억하는 말은 “불편했어요.(uncomfortable!)” 나도 그렇다고 냉큼 대답하며 마주 웃었다. ‘채식주의자’는 미국에 가져가서 다 읽은 후 거기에 사는 한국인 소설가에게 선물로 주었다. 갖고 있을 걸 그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