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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물처럼 흐르지만 추억은 여전히 빛난다

엄다경 시민기자
등록일 2024-11-07 18:35 게재일 2024-11-08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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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제주 따라비오름 숲길을 걸어가고 있다.

쉰은 하늘의 뜻을 알게 된다는 지천명의 나이이다. 어릴 때는 쉰이 되면 세상의 이치쯤은 가볍게 알게 되고 신이 주는 심오한 뜻도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으려니 했다.

하지만 쉰에 당도하고 보니 왠걸 갈수록 세상살이는 막막하고 알게 된다는 하늘의 뜻도 아리송할 뿐이다.

쉰 중반의 나이에 처음으로 초등학교 동창회를 하게 됐다. 오래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과의 만남을 앞두고 어린 날을 떠올려본다.

우리 때는 국민학교였던 그 시절에서 벌써 40년이란 세월이 훌쩍 갔다.

천진난만했던 아이들은 이제 중년의 아저씨 아줌마들이 되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에 대한 기억이란 특별할 수밖에 없다.

아직 세상 때가 묻지 않았던 맑았던 시절. 그때를 함께 보낸 친구들이니 쉽게 잊혀지지가 않는다. 특히 시골 학교 아이들은 인원 수가 적다보니 초등 6년을 계속해서 한 반으로만 올라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기억의 페이지에는 아이들의 특성과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때의 학교 정경도 마찬가지다.

교정의 나무에서 까맣게 익어가던 버찌 열매와 둥글었던 분수대, 오종종 화단에 모여 피던 채송화의 빨강색도 선명하다.

남자애들이 척척 잘도 건너가던 구름다리 철봉과 높았던 미끄럼틀은 이미 다 사라졌을 것이지만 내 기억 속에는 여전히 살아 있다. 아련한 감상에 젖어 윤제림 시인의 쉰이라는 시를 꺼내 읽어본다.

“하루는 꽃그늘 아래서/ 함께 울었지// 하루는 그늘도 없는 벚나무 밑에서/ 혼자 울었지// 며칠 울다 고개를 드니/ 내 나이 쉰이네// 어디 계신가…. 당신도/ 반백일 테지?”- 윤제림 시 ‘쉰’ 전문

이제 반백이 되었을 동창들을 떠올려 본다. 시간의 강물이 우리들 사이를 빠르게 흘러갔다. 반백의 나이에 조우할 모습이 사뭇 기대가 된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물결처럼 많은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몇몇은 서둘러 멀리로 돌아가버린 친구도 있다고 들었다. 모두 단풍 곱게 물든 가을날처럼 원숙한 중년이 되었으리라 가만히 그려본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진다는 예보도 있다. 노랗게 물든 은행잎도 곧 우수수 떨어져 내릴 것이다. 친구들도 저물어가는 가을을 안타까워하며 나들이를 나갈지도 모르겠다. 꽃그늘 아래서 함께 울던 그대는 이 가을 어디에 계신가? 샛노란 은행잎이 바닥을 구르는 모습에 눈빛이 쓸쓸해지고 있는가? 꽃피던 시절이야 차마 잊지 못했겠지. 하지만 그대들도 이제 반백일 테지?

/엄다경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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