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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가 오는 걸 바라보다

김순희 시민기자
등록일 2024-11-19 18:31 게재일 2024-11-2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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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어대에서 바라보는 명사십리 옆으로 고래가 달려오는 듯하다.

7번 국도를 달리면 푸른 바다를 덤으로 선물 받는다. 포항에서 강구항까지 바다의 빛깔이 철이 철인지라 깊어질 대로 깊어졌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 바다도 철썩철썩 글 읽는 소리를 들려준다. 듣기 좋은 그 소리를 벗 삼아 달려 영해면 괴시리에 닿았다. 그 옛날 목은 이색은 관어대에 올라 고래불에 모여드는 물고기의 노래를 들었다고 한다. 선비들은 모두 MBTI가 F 성향이었나 보다.

관어대(觀魚臺)는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에 있는 상대산 정상에 있는 정자다. 지붕의 기와끼리 이마를 맞대는 괴시리 마을, 주말이라 그런지 조용하던 동네를 찾은 사람들로 수런거렸다. 거기서 두어 번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관어대가 있다. 오래된 팽나무 이정표가 입구에 선 길은 공사 중이라 옆으로 돌아들어 갔다.

해파랑길을 걷다가 영덕군에 들어서면 블루로드라고 또 하나의 이름이 붙는다.

그 코스 중에 관어대를 둘러보도록 해 놨다. 주차장에 간단한 설명을 읽고 산으로 방향을 잡았다. 계단과 야자 매트와 황톳길이 이어진다. 많은 사람이 SNS에 초보자도 30분이면 오르는 가벼운 등산코스라고 적어서 그런 줄 알고 나섰는데, 가파른 길이라 숨이 차는 길이다. 교통약자를 위해 케이블카가 설치된다는 소문도 있다.

11월 중순이라 가을 옷차림으로 온 게 후회가 됐다. 여전히 낮 기온 20도가 넘어 땀 범벅이다. 조끼를 벗고, 목에 둘렀던 스카프를 풀렀다. 먼저 올랐던 지 하산하는 연인들의 하얀 반 팔 티셔츠가 오늘은 딱이었다. 운동 부족인 허벅지가 뻐근할 즈음, ‘아름다운전망대’(전망대 이름은 좀 더 낭만적으로 바꾸는 걸 추천)가 나타났다. 이름 그대로 산 아래로 영해평야, 동해로 흐르는 강, 강을 품어주는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땀을 식히며 눈으로 풍경을 더듬었다.

관어대까지 마지막 남은 가파른 나무계단을 올랐다. 그 끝에 울퉁불퉁한 바위가 길처럼 이어졌다. 어찌 이리 오르기 안성맞춤인 바위가 있나 했더니, 콘크리트로 바위를 똑 닮은 계단을 만들었다. 색칠까지 바위 그 자체다. 요런 생각은 누구의 의견이었을까? 만나면 어깨를 두드려 주고 싶다.

혼자 흐뭇해하며 고개를 드니 몇 송이 구절초 사이로 관어대가 의젓하게 앉았다. 이색 ‘1328~1396’이 쓴 ‘관어대부’를 보면 “동해 석벽 밑에 임하여 노는 고기를 셀 만하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라고 명칭의 의미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 뒤를 따라 올라온 동네 분이 어부들에게 고기떼가 오는지를 알려주던 곳이라고 자랑하셨다. 나팔을 불어 알렸을까, 목청껏 소리쳤을까, 북소리였을까 상상하며 신발을 벗고 정자에 올랐다. 명사십리 모래밭과 푸른 소나무 방풍림이 바다를 깜싼다. 어찌나 푸른지 거기에 고래가 헤엄치면 손에 잡힐 듯했다.

상대산 정상에 올라서면 서쪽은 바위 절벽이 있고, 동쪽으로 동해가 펼쳐져 있다. 북쪽은 백사장을 끼고 울진군 후포면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포항 호미곶이 보인다. 관어대는 동해안을 대표하는 명승지 중 하나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그래서인지 많은 인사가 관어대를 방문하여 작품을 남겼다. 고려시대 관어대를 노래한 시는 안축이 쓴 ‘단양 북루의 시에 제하여 부치다 병서’를 시작으로 이색의 ‘신석보를 전송하며’, 이숭의 ‘관어대에 올라’ 등 영덕 지역에 부임하거나 유배를 온 인물이 남긴 작품이 많다.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단양부지’ 등의 읍지 및 지리지류의 누정 항목에 확인되나, 언제 소실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현재 관어대는 2015년 복원한 것으로 고려 말부터 조선시대 영해 지역 사람들의 휴식처이자 문화 교류의 공간으로 활용되며 지역의 역사성과 문화적 정체성을 지닌 공간으로 의미가 크다. 원래의 관어대는 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100m 정도 떨어진 절벽에 있었다고 전한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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