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0일 시작한 청도 인문학 첫 번째 주제 ‘문명과 인간’은 10월 22일 ‘동북아평화경제공동체구상’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됐다. 주 1회 90분으로 실행한 청도 인문학 강연은 이로써 27회로 하나의 매듭을 짓게 된 셈이다. 세계 4대 문명과 초원 문명으로 시작하여 칼 야스퍼스의 ‘축(軸)의 시대 Achsenzeit’를 거쳐 유라시아의 문명사를 두루 살핀 것이다.
‘문명과 인간’은 2020년 11월에 출간한 졸저(拙著) ‘유라시아 횡단 인문학’에 터를 둔 것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유라시아의 과거와 현재를 하나의 기준으로 두고, 그것에 기초하여 동북아 세계의 미래상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과거와 미래의 분기점이지만, 과거의 축적이 현재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과거는 현재만큼 중요하다 할 것이다.
‘유라시아 횡단 인문학’은 상당히 많은 분량을 20세기까지의 과거에 할당했고, 21세기 이른바 4차 산업혁명 시대와 미래진단은 소략한 감이 있다. ‘동북아평화경제공동체구상’은 대내외적인 정세변화가 극심했던 까닭에 자기검열에 걸려 빠지는 비운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청도 인문학 강연에서는 그것을 강조했기로 내겐 특별한 의미가 있다 하겠다.
‘문명과 인간’을 마칠 즈음에 수강자들에게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었고, 그들은 스스럼없이 ‘논어’를 거론했다. 그리하여 10월 29일부터 ‘논어’ ‘학이편’ 제1장부터 읽기로 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2500년 전 공자와 그 제자들이 남긴 어록을 낯선 한문 문장과 해설, 각주(脚註)까지 참고해 읽어야 하니 수강생들은 쉽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2006년 9월에 ‘논어’를 처음 만났다. 연구년 한 학기를 허송세월(虛送歲月)하다가 홀연 반성하는 생각이 들어 지인에게 어렵지 않은 번역본 ‘논어’를 추천받은 것이다. 그리하여 개강할 무렵까지 6개월 동안 6번을 읽고, 감명 깊게 다가온 문장을 A4 용지 6장 정도로 축약했다. 그리고 아침마다 1시간 남짓 그것을 한문으로 쓰는 습관을 만들었다.
나중에 독회 10번을 채우고 분량도 A4 용지 10장으로 늘렸다. 거리에서 광장에서 식당에서 잠자기 전에 아침에 일어나서 10장을 다 외우려고 무던히 애썼다. 좋은 문장이나 구절 혹은 단락은 통째로 기억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어서 그런지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논어’를 읽으면서 노자의 ‘도덕경’과 장자의 ‘장자’, 사마천의 ‘사기 열전’을 보태서 읽었다.
그런 독서 사이사이에 ‘논어’, ‘도덕경’, ‘장자’, ‘열전’ 관련 서적들을 대략 30권 남짓 통독했다. 좋은 서책은 당연히 서평(書評)을 써서 기억에 오래 남도록 ‘홈페이지’에 쟁여놓았다. 그런 결과로 2008년 가을부터 ‘동양고전’ 대중강연을 하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고 있는 형편이다. ‘논어’와 처음 만나려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것은 내 눈으로 읽고, 내 손으로 써보고, 내 머리로 먼저 생각해보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내가 노력한 만큼 독서의 결실이 나와 함께한다는 이치를 기억하시기 바란다. 하나의 문장이라도 기억하려 애쓰고, 기억한 문장을 실생활과 대화에 활용하면 더 유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