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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있는 풍경

김순희 시민기자
등록일 2024-11-26 19:22 게재일 2024-11-27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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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명도학교 졸업생들이 일하는 포항명도학교 교내 카페에 나눔미술은행에서 대여해준 매화 그림이 환하게 걸렸다.

보문단지에서 천북으로 가는 언덕을 오르자 하늘에 무지개가 걸렸다. 눈부신 가을색에 환호성을 지르던 일행이 갓길에 차를 세워보라고 했다. 이건 찍어야 한다며. 이제껏 살면서 이렇게 선명한 무지개를 본 적 없었다. 하늘에 반원을 정확하게 그린 무지개, 빨주노초파남보 띠를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옷자락을 여미던 나그네의 겉옷을 벗기는 햇살처럼 무지개가 자동차를 갓길에 세우게 했다. 비상깜빡이를 켠 채로 천천히 달리던 우리가 갓길을 만나자 차를 세웠고, 우리 차 앞에 중형차가 서더니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내려 하늘을 향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조금 후, 탱크로리에서 운전기사가 내려 풍경 사진을 찍었다. 빠른 속력으로 달리던 사람들의 발길을 무지개가 멈춰 서게 만든다. 그 풍경까지 아름다워 그림 같다.

멋진 풍경을 보면 그림 같다고들 한다. 종교화, 역사화, 인물화의 시대를 넘어서 풍경화가 유행하던 시절, 귀족의 거실에 걸린 풍경화를 많은 사람이 동경하게 된다. 이때부터 멋진 풍경을 보면 ‘그림 같다’라는 관용적인 표현이 생겨났다고 한다. 그림 같은 무지개를 보다가 며칠 전 찾아가서 본 그림이 떠올랐다.

지인이 근무하는 학교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그림을 보내왔다. 나눔미술은행에서 포항명도학교에 소장 중인 그림 16점을 무상으로 대여해 준 것이다. 올 10월에 신청해서 11월에 대여가 되어 1년 동안 학교 곳곳에 전시할 거란 소식이었다. 멀리 미술관까지 다니러 가서 구경할 작품이 집 가까이 왔다니 한걸음에 달려갔다.

포항명도학교는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우현동에 있는 사립 특수학교이다. 지적장애 학생을 위한 특수교육기관으로 유치부, 초등부, 중학부, 고등부, 전공과를 두고 있다. 근처를 지나면서 교문을 들어서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수업이 끝나 학생들을 태운 버스가 학교를 빠져나가는 것을 기다렸다가 오후 3시에 갔다. 수업에 방해되지 않을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 학교에서 30년 넘게 근무한 지인의 안내를 받으며 제일 먼저 급식소 벽에 걸린 작품을 보았다. 오른쪽 밑에 네임텍이 붙었다. 작품명, 작가 이름, 큐알코드(큐알코드를 찍으면 작품 설명이 있는 사이트에 접속이 가능하다.) 등이 적혔다. 강지만 작가의 ‘글라이더’라는 제목이었다. 새와 글라이더에 탄 친구들이 함께 하늘을 누비는 작품이다. 미술관에서 직접 방문해 작품이 어느 공간 어느 위치에 놓이면 좋을지 살피고, 튼튼한 틀까지 만들어 꼼꼼하게 부착했다고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나눔미술은행은 전국 곳곳에서 누구나 문화예술을 누릴 수 있도록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소장품을 무상으로 대여·전시하는 예술 나눔 사회공헌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노인복지시설, 특수교육시설, 전국문화기반시설 등 전국 10개소에 미술은행 소장품 161점을 지원했고, 2024년에는 총 12개(지난해 대비 2개소 추가)의 기관에 미술은행 소장품을 확대 지원한다.

교장실 앞에 붙은 그림이 인상적이었다. 양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신사가 뒷짐을 지고 푸른 바다를 바라다보는 모습이다. 저 그림이 식당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하며 함께 웃었다. 계단이 아닌 오르막길을 따라 2층으로 오르는 복도에 그림 두 점, 또 복도 휴게실에 집시의 시간이라는 작품 앞에서 그림 속에 머물렀을 주인공의 시간을 보며 우리의 지난 시간을 이야기했다. 그림을 핑계로 학교 건물 곳곳에 아이들의 발길이 닿는 곳곳을 소개해 주셨다. 도서관, 과학실, 체험실, 그러다 미술실 앞에 가장 많은 그림을 전시했구나 싶었다. 건물을 오가며 그림 앞에서 환하게 웃을 아이들을 상상하니 그림 같았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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