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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혈

등록일 2024-12-10 19:09 게재일 2024-12-1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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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철규

(전략)

베인 자리의 살은 겹겹의 층을 이루고 있고

몸의 끝으로 갈수록 혈관은 좁아지고 갈래는 더 많아진다

잔뿌리 같은 혈맥에서 피가 배어 나온다

상처를 가만히 누르면 피가 멈춘다

여기는 피가 나올 곳이 아니니

원래 가던 길로 가세요

헝겊으로 손가락을 감싸 쥐고 바닥에 눕는다

등 밑으로 우툴두툴한 선로가 가로놓여 있다

피가 굳어서 딱지가 되거나

벌려졌던 살이 미세하게 접합되어 가면

출구가 나오기 전까지 모든 터널은 동굴처럼 느껴진다

바늘귀를 찾는 실 끝처럼 멀리서 기차가 천천히 터널을 향해 다가온다

우리는 가끔 살을 베여 얼른 ‘지혈’하는 일을 겪곤 한다. 시인은 이 지혈을 시의 소재로 삼았다. 피를 마음에 숨겨둔 기억이라고 생각한다면? 지혈은 그 기억이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을 막는 일이다. 하지만 그 기억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출구를 찾지 못한 ‘피-기억’은 동굴 같은 터널을 돌아다닐 것이다. 시는 이 터널을 돌아다니는 피를 기차로 환유한다. 시인의 내면 깊숙한 터널을 돌아다니는 ‘기억-기차’로.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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