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 필연적으로 삶을 파괴하는 <br/> 모든 행동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 처럼<br/> 문학에 주어지는 이 상의 의미를 나누고 싶다”
‘지난해 인류를 위해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이 있다. 1901년부터 시상을 시작한 노벨상이다. 그 영예로운 상을 대한민국 소설가 한강이 받았다. 문학 부문이며 노벨 문학상으로는 한국인 최초, 아시아 여성 최초이다. 스웨덴의 과학자이자 발명가인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이 유언으로 명시한 물리학·화학·생리학·문학 분야에 노벨상이 주어지며 시상 순서도 유언에서 명시한 순서를 따른다. 유언에 없었던 노벨경제학상은 1969년 뒤늦게 제정돼 맨 마지막 순서에 시상한다.
노벨 시상식이 지난 10일 오후 4시(현지 시각) 스웨덴 스톡홀름의 명소 콘서트홀에서 있었다. 무대 한가운데 알프레드 노벨의 동상이 자리하고 노벨상 수상자 11명은 객석 맨 앞줄에 스웨덴 왕족과 함께 일렬로 앉았다. 이들이 앉은 빨간 의자는 노벨상 수상자를 위한 특별대우로 스웨덴 왕가에서 마련한 ‘왕족용 발코니석 의자’이다. 수상자 소개 연설은 각 분야 노벨상 수여 기관 관계자가 하며 문학 부문은 스웨덴 작가이자 한림원 위원인 엘렌 맛손이 스웨덴어로 한강을 소개했다. 그는 “한강의 글에서는 흰과 빨강, 두 색(色)이 만납니다.”로 연설을 시작하며 ‘말보다 강한’ 작가의 작품세계를 두 색에 비유한다. 그녀의 목소리는 매혹적으로 부드럽지만, 형언할 수 없는 잔혹함, 돌이킬 수 없는 상실에 대해 이야기 한다며 두 색은 그녀의 소설을 통해 되짚는 역사적 경험을 상징한다고 소개한다.
시상식이 끝나고 스톡홀름 시청사(Stadhus)로 옮겨진 연회장에서 수상자의 ‘특별감사연설’이 이어졌다. 그녀의 영어 연설은 특유의 나긋나긋하고 조용한 목소리에 실려 1300여명의 시선을 집중 시킨다. 폭우가 쏟아져 내리던 여덟 살의 어느 날을 기억한다고 시작한 그녀는, 마치 문학이 필연적으로 삶을 파괴하는 모든 행동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처럼 문학에 주어지는 이 상의 의미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다며 “여기서 함께, 폭력에 맞서면서요.”라는 말로 감사연설을 마무리한다. 이는 노벨위원회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실제 영어 원고 마무리 글이었던 ‘저는 문학에 주어지는 이 상의 의미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여기 함께 서서요.’와 다르다. 작가의 신중한 애드리브로 마무리 된 연설은 현재 한국 상황 등을 고려한 것이었을 거라는 기사를 읽는다.
2016년 ‘채식주의자’가 영국 부커상을 받으며 베스트셀러에 올랐을 때 서점으로 달려간다. 단숨에 읽으리라는 마음과 달리 읽는 내내 글이 주는 충격으로 책을 몇 번이고 덮으며 심호흡을 한다. 경기도의 어느 학교에서 유해 도서로 분류해 폐기했다는 기사를 보며 충분히 공감도 한다. 노벨문학상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재조명 되고 있지만 청소년이 읽고 받아들이기에 그녀의 작품세계는 노벨 시상식에서 소개했듯이 고통, 피, 칼로 깊게 벤 상처로, 형언할 수 없는 잔혹함, 돌이킬 수 없는 상실감으로 삶을 대변하고 있다.
스웨덴 아카데미는 그녀의 작품을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며 인간 삶의 연약함을 시적으로 표현했다’는 평가로 선정 이유를 밝혔다. 수상 소식을 들은 그녀의 아버지 한승원 작가가 기쁜 마음으로 고향 마을에서 돼지를 잡아 잔치를 열려고 했을 때, 팔레스타인과 우크라이나가 전쟁 중인 지금 이 상황에 축하 잔치를 여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그녀는 만류했다.
노벨문학상은 대한민국의 자랑이다. 한강의 감사연설 마지막 구절을 되뇌어본다.“여기서 함께, 폭력에 맞서면서요. 감사합니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