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목욕탕의 추억

김순희 시민기자
등록일 2025-01-14 17:58 게재일 2025-01-15 12면
스크랩버튼
‘카페 1925’. 옛날 목욕탕 모습을 간직한 탕을 그대로 살려 카페 곳곳이 감성 가득하다.
‘카페 1925’. 옛날 목욕탕 모습을 간직한 탕을 그대로 살려 카페 곳곳이 감성 가득하다.

백희나 작가는 나무꾼과 선녀의 그 선녀님이 동네마다 한 개 정도 있을법한 장수탕에서 아직 살고 있다는 설정의 그림책을 그렸다. 탕 속에서 장난치기 좋아하는 어린이들과 명절 앞두고 묵은 때를 밀어 본 기억을 가진 어른들의 사랑을 받아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그림책에 나오는 장수탕같이 정겨운 목욕탕이 경주시 감포읍에도 있다. 무려 100년 된 목욕탕이다. 목욕탕은 골목 안쪽에 있어서 주차장이 없어서 공영주차장에 주차하고 조금 걸어야 나온다. 거기까지 가는 길은 해국길이다. 담벼락에, 계단에 환하게 해국이 피었다.

최근 전국에 벽화마을이 곳곳에 생겨났다. 마을 특징을 잘 살려 그림으로 표현해 관광객을 부른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비바람에 흐려지고 탈색돼 처음의 뜻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찾는 발길이 끊긴다. 오늘 찾아간 감포 해국길의 꽃은 한 달 전에 새 꽃이 피었다. 적산가옥이 구룡포처럼 아직도 남아있는 골목길마다 새로운 벽화가 가득하다. 오래되고 낡은 것을 없애지 않고 그대로 살려 보존하려는 마을 사람들의 뜻이 고귀하다.

해국 계단은 그림이 예뻐서 이미 유명한 곳이다. 얼마 전 드라마 ‘조립식 가족’의 촬영지였다. 계단 중간에 작은 카페가 드라마 속에서는 주인공 가족이 운영하는 칼국수 집이었다. 해국꽃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던 곳이 드라마에 나오니 더 반가웠다. 감포항과 골목길 곳곳이 장면마다 등장했었다.

해국 계단 옆으로 난 꽃길을 따라가다 뻥튀기 가게가 보였다. 주인아저씨가 기계를 돌리다 말고 길을 묻는 우리에게 ‘카페 1925’가 바로 저기라고 알려주었다. 큰 화분에 꽃이 가득한 그림이 사진을 찍게 만드는 골목 안쪽에 자리한 카페다. 정문 유리에 목욕탕을 알리는 온천 표시가 보인다.

이곳은 실제로 1925년부터 70년간 목욕탕이었다가 30년은 문을 닫은 채 허물어져 가던 건물을 최대한 그대로 살리고 천장만 고쳤다. 마을 어르신들과 청년들이 힘을 합쳐 동네를 되살렸다. 조용하던 골목에 주말마다 관광객의 소리로 시끌시끌하다. 문을 열고 카페에 들어서면 중간에 작은 방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과 왼쪽으로 다 들어갈 수 있다. 아마 예전에는 남탕 여탕으로 들어가던 모습 그대로이다. 오른쪽으로 들어가니 대표메뉴들이 싱크대 상부장에 붙어있다.

감포 바다에 동동 뜬 부표 같은 느낌을 살린 ‘부표라떼’, 경주 산내의 미숫가루로 만든 ‘18곡 쉐이크’, 솔향이 솔솔 나는 청량함 가득한 스파클링 음료 ‘송대말의 오후’, 경주 동해안의 일출을 닮은 ‘고아라의 아침’ 같은 특별한 메뉴가 돋보인다.

경주의 예쁜 풍경을 담은 사진들, 1925감포 카페와 관련된 굿즈들도 팔고 있어 구경할 맛이 난다. 옛날 목욕탕 모습을 그대로 남겨둔 채 최소한의 개조만 진행한 카페여서 요즘 유행하는 레트로 감성이다. 인위적으로 레트로 감성을 재현한 게 아닌, 진짜 레트로. 대중목욕탕의 온탕과 냉탕이 떠오르는 ‘탕’과 벽, 타일부터 바닥까지, 그리고 목욕탕 사물함까지, 옛날 목욕탕에 와있는 느낌이다. 때밀이 쿠션에 주문하면 홈이 파여진 락커 키를 손에 쥐여준다.

‘즐겁고 상쾌한 목욕 시간을! 아모레, 은방울’ 구석구석 구경하는 재미가 있는 카페다. 사물함 한 칸에 놓인 로션 브랜딩 네임 ‘QueNam’, 한쪽 구석에는 방명록을 남길 수 있다. 이 공간 또한 옛날 수동타자기가 놓여있어서 아늑한 분위기다. 500원을 넣으면 옛날 오락기로 게임을 해볼 수 있도록 오락기 두 개가 놓였고, 아날로그 텔레비전은 물론이고, 주변 콘센트와 머리 건조기, 물 절약을 호소하는 안내문까지 오래된 추억을 소환한다. 목욕탕 카페는 매주 수요일은 휴무다.

/김순희 시민기자

사회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