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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을사년

박귀상 시민기자
등록일 2025-01-16 19:34 게재일 2025-01-17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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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日 제국주의에 의한 치욕스런 늑약 체결<br/>1965년 피해자들의 반발 뒤로 한 한일기본 조약<br/>후손들에 “현명하게 헤쳐나간 2025년” 기록되길  
을사년 포항시의회의 사자성어는 ‘운외창천(雲外蒼天)’이다. 구름이 걷히고 맑고 푸른 하늘이 나타나는 해가 되길 바란다.

음양오행설에 따르면 천간 중 甲·乙이 배치된 방위는 동쪽이다. 동쪽의 색상이 청(靑)이라 지난 갑진년은 푸른 용의 해였고 다가온 을사년은 푸른 뱀의 해가 된다. 재미로 알아보면, ‘푸른 뱀’은 캐나다 펠리섬에만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몸길이가 2m로 ‘블루레이서(Blue Racer)’라고 불릴 만큼 시속 약 7km까지 움직인다. 1960년대 사람들이 농사를 짓기 위해 그들의 보금자리에 불을 질러 지금은 100여 마리 정도만 남아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 지 여러 날이 지났지만 올해는 유독 송구영신(送舊迎新)의 덕담이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해 말, 비상계엄에 놀라 쓸어내린 가슴에 무안국제공항의 여객기 사고까지 엎친 데 덮치며 너나없이 혼미한 정신으로 갑진년을 보낸다.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정쟁에 가슴 졸이며 새해를 맞이한다. 역사를 더듬어 보니 지난 을사년들이 또한 예사롭지 않다.

누구라도 ‘을사’라고 말하면 바늘귀에 실이 딸려 나오듯 ‘늑약(勒約)’을 생각한다. 제국주의가 만연하던 시절, 일본은 대국의 힘을 입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는다. 을사오적으로 불리는 이지용, 이근택, 박제순, 이완용, 권중현이 나라를 넘기며 을사조약을 체결한다. 이 조약은 일본에 의해 강제적으로 맺어진 치욕스런 사건으로 우리는 이를 늑약이라 말한다. 나라의 주권이 빼앗기며 사실상 식민지로 전락한 1905년, 이 해도 을사년이었다. 식민지의 고통은 오롯이 백성들 몫이다.

육십갑자에 의해 다시 돌아온 을사년인 1965년. 한국은 일본과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한다. 박정희 정권은 경제개발에 필요한 외자도입의 일환으로 이 협정에서 온전치 않은 배상과 차관 등으로 5억 달러를 받아 포항제철과 경부고속도로를 만들며 경제개발에 힘을 쏟는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을사년 2025년 지금 우리는, 애써 이룬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지나온 을사년들을 돌아보니 그래도 우리는 그 아픔 속에서도 많은 것을 이루어왔다. 1845년 을사년, 조선중기 당시는 칠거지악이 존재하던 철저한 계급사회였다. 자신의 노력이나 자질과는 아무 상관없이 숙명적으로 지워진 신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천민, 노비, 상민, 양반의 굴레는 대대손손 세습 되어 부모가 천민이면 자식도 천민인 것이 순리라고 생각했다. 1905년 을사년, 을사늑약으로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계급사회는 자연적으로 무너졌지만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비참한 삶이 이어진다. 해방과 대한민국 건국도 무색하게 다시 6·25 전쟁을 겪으며 모진 세월은 계속된다.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고 1965년 을사년, 피해자들의 반발을 뒤로 한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되고 백성들의 한 서린 가슴 아픈 돈을 밑천삼아 ‘잘살아보자’는 이념 하나로 산업화 근대화 민주화 선진화를 숨 가쁘게 이루며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한 오늘에 이르렀다. 이루기도 어려웠지만 지켜나가는 건 더 어렵다.

분위기가 몹시 스산하고 쓸쓸할 때 쓰는 형용사 ‘을씨년스럽다’는 말이 ‘을사년스럽다’는 말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쉽게 타협되지 않을 것 같은 정쟁을 바라보고 있는 국민들의 지금 마음은 그야말로 을씨년스럽다. 60년 뒤 2085년 을사년을 살아 갈 후손들이 역사를 짚어볼 때, 2025년 을사년을 사는 우리들이 현명하고 지혜롭게 잘 헤쳐 나갔노라 기록되길 바라본다. /박귀상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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