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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교수가 들려주는 겸재 정선

김순희 시민기자
등록일 2025-02-18 19:10 게재일 2025-02-19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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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깊어지는 대표작들 소개<br/>재미있는 강의와 함께 전시 관람 ‘눈길’
겸재 정선이 30대에 그린 금강산.

얼마 전 경주예술의전당에서 유홍준 교수 강의를 들었다. 인터넷으로 좌석 예매를 하자 5분 만에 매진이었다. 그의 유명세로 인한 티켓 파워가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시간에 맞춰 원화홀에 가니 책을 가져온 사람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줄이 길었다. 아, 우리 집 책꽂이에 가득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화인 열전’이 안타까운 순간이다. 최근에 사서 읽은 그의 사적인 이야기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도 재밌었다. 그 책을 들고 저 줄에 섰다가 자필 사인을 받았다면 얼마나 좋을까 때늦은 후회를 했다. 현장에서 책을 판매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늘 그렇듯 강의는 재밌었다. 강의 장소가 경주라 ‘신라’의 뜻이 무엇일까로 시작해 경주 사람 중에도 모르는 이가 있는 명활산성을 말할 때 역시 여러 역사 지식을 섭렵하였구나 싶었다. 강의를 들으며 옛 그림을 보는 눈이 조금은 밝아졌다.

여러 화가 이름이 나왔지만 김홍도와 정선의 그림 이야기가 제일 많았다. 그림이나 글씨는 나이가 들어 그릴수록 깊이가 더해진다는 것을 젊어서 그린 것과 비교해 보여주니 객석에서 탄성이 동시에 나왔다.

단발령에 올라서서 금강산 일만이천 봉을 그린 36세의 겸재 정선은 금강산의 아름답고도 웅장한 풍경을 화폭 안에 담아냈다. 72세 노년의 정선이 무르익은 필치로 그린 금강산의 풍경은 덜어낼 것을 다 덜어내고 몸에 힘까지 다 빼고 편안해진 금강산이라 보는 이도 마음이 평안해진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는 ‘구달바별’의 작품은 21세기에 정선이 금강내산을 다시 그린다면 어떻게 표현했을까 하는 상상에서 출발했다.

LED가 화선지가 되고, 컴퓨터그래픽(CG)이 붓끝이 됐다. 생명력 넘치는 웅장한 금강산의 모습을 화려하고 역동적으로 연출했다. 작품은 온통 반짝이는 자개로 표현한 금강산의 풍경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어 CG로 만들어진 실제에 가까운 금강산 절경이 나타나 화면을 통해서나마 금강산의 ‘진경’을 엿볼 수 있다.

겸재 정선은 45세 되던 1720년에는 하양 현감으로 나가 6년간이나 재직하며 부근의 충청도 일대와 영남 일대의 명승들을 두루 유람하고 사생하며 구학첩과 영남첩을 그리며 진경산수화를 더욱 발전시켜 나갔다.

58세 되던 1733년에는 청하 현감으로 나가 내연산삼용추등 영남과 관동 일대까지 두루 사생하며 그 폭과 깊이를 더해갔다.

76세 되던 1751년 윤5월 하순에는 거의 한 달이나 지속되던 장맛비가 그치며 개이기 시작하는 인왕산의 생생한 모습을 묵직하고 깊은 쇄찰법으로 과감하게 쓸어내려 인왕제색도를 완성함으로써 겸재 진경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대표작을 창조하였다.

강의를 듣고 일행과 함께 경주문화관1918 전시를 관람했다. 자료화면에 나왔던 그림을 손으로 만져가며 느꼈다.

또 명활산성의 위치를 모른다는 회원이 있어서 보러 갔다. 진평왕릉에 주차하고 명활산성까지 걷는 선덕여왕길도 알려주었다. 그때 경주의 아름다운 능선 너머로 해가 졌다. 붉어지는 노을에 우리는 명화를 보듯 한참을 바라보았다. 좋은 강의 덕분에 자연을 보는 눈도 더 밝아졌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5분 만에 매진되었던 객석에 빈자리가 많았다는 것이다. 책임감 있는 시민이 더 좋은 강의와 전시를 볼 자격이 있는 것이다.

우리 고장 청하에서 ‘진경산수화’를 완성했다니 더 반가운 일이다.

포항 월포 용산 등산로에 겸재 정선길이 있다. 몇 해 전 그 길을 돌아 내려오는 길에 이정표를 발견하고 반가워 사진을 찍었더랬다. 강의를 듣고 그 길에 다시 섰다.

그런데 정선길 이정표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비바람에 사라진 걸까? 아니면 우리가 길을 잘못 든 걸까? 그림을 보는 이의 마음까지 생각해 그렸던 겸재의 진경산수화가 용산을 서성이게 한다.

/김순희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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