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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가 주는 혜택에 빠져보자

엄다경 시민기자
등록일 2025-02-20 19:12 게재일 2025-02-21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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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크린 마음에 드넓은 자연의 기운 채우자<br/>바쁜 일상 속 못 봤던 많은 것 만날 수 있어
햇살이 쏟아지는 문경 영강의 모습.

이월도 중순을 넘어선다. 입춘이 지났지만 추위는 여전하다. 겨우내 추위 핑계로 아무 운동도 하지 않았더니 몸이 굳는 느낌이다. 곧 여행 일정도 잡혀 있어서 체력 보강도 할 겸 걷기를 시작했다. 집을 나와 조금은 빠르게 걸음을 옮긴다. 아직 겨울이 묻은 바람이 마주 선다. 시린 손을 주머니에 넣고 걷는다. 주택가를 지나 들판으로 접어든다. 조금만 걸으면 자연과 만날 수 있는 것은 시골 사는 혜택이다. 늦추위 때문인지 길에는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기찻길을 건너 숲길 가까이 다다랐다. 철길 옆 작은 찻집 외벽에 시화가 걸려 있다. 물끄러미 서서 읽어본다. 천천히 내게로 스며드는 시구, 산책길이 풍성해진다. 길가로 마른 풀 덩굴이 바람이 흔들린다. 쭉 펼쳐진 밭들을 보니 시 한 편이 떠오른다.

“가까이 다가서기 전에는 /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 보이는 / 아무것도 피울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 겨울 들판을 거닐며 / 배운 바람 끝자락도 맞을 만치 맞으면 / 오히려 더욱 따사로움을 알았다 / 듬성듬성 아직은 덜 녹은 눈발이 / 땅의 품 안으로 녹아들기를 꿈꾸며 뒤척이고 / 논두렁 밭두렁 사이사이 / 초록빛 싱싱한 키 작은 들풀 또한 고만고만 모여 앉아 / 저만치 밀려오는 햇살을 기다리고 있었다 / 신발 아래 질척거리며 달라붙는 / 흙의 무게가 삶의 무게만큼 힘겨웠지만 / 여기서만은 우리가 알고 있는 / 아픔이란 아픔은 모두 편히 쉬고 있음도 알았다 / 겨울 들판을 거닐며 / 겨울 들판이나 사람이나 / 가까이 다가서지도 않으면서 /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을 거라고 / 아무것도 키울 수 없을 거라고 / 함부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 - 허형만 시 ‘겨울 들판을 거닐며’

시인이 말하였듯 들판은 아무것도 없어 보이지만 많은 것을 담고 있다. 그 뜻을 곰곰 되새기며 멈추지 않고 걷는다. 강가에 다다랐다. 문경의 영강 줄기이다. 체육공원과 이어진 강가에 서니 강물이 윤슬로 가득하다. 순간 짧은 탄성을 지르며 걸음을 멈춘다. 세상에 어떤 것이 저보다 아름다울까. 반짝반짝 빛나는 윤슬. ‘이렇게 아름다운 순간이 내 생애 몇 번이나 더 있을까’라는 어느 시인의 문장이 떠오른다. 세상의 눈부신 반짝임이 거기 다 들어 있다. 한참 넋을 잃고 바라보다 보니 갈대가 손을 내민다. 겨울을 맨손으로 지나와서 물기가 말랐다. 어디 먼데 다녀온 친구처럼 강바람이 반갑다 뺨을 만진다. 물 위로 오종종 물새들이 모여 있다. 가장자리에 얼음이 얼어 있어도 발 시리지 않은 모양이다. 부지런히 자맥질하는 몇 마리도 보인다. 작은 짐승도 제 먹을 것 찾아 여념 없음이 기특하다.

모자에 마스크로 무장한 노인 둘이 나란히 걷고 있다. 몸이 불편해 보이는 할머니 한 분도 천천히 걷고, 털조끼를 입고 되똥되똥 주인을 따라가는 강아지도 걷는다. 걸으면서 아름드리 소나무도 황홀히 올려다보고 마른 물풀의 휘어진 허리에도 눈을 준다. 다시금 걷는 것의 소중함을 느낀다. 차를 타고 휭 지나갔으면 보이지 않았을 많은 것들이 걸으면 볼 수 있다. 작가나 시인들은 그래서 걷기를 즐겼다. 걸으면서 자연과 소통하고 영감을 얻었다. 춥다고 웅크려 있던 마음에 저절로 드넓은 자연의 기운이 채워진다. 곧 봄이 올 것이다. 이제 묵은 겨울을 털어내고 모두 걷기를 시작해 보자. 바쁜 일상을 사느라 보지 못했던 많은 것을 만날 수 있다. 걸음이 쌓일수록 풍성해지는 시간을 가져보길 권한다. 봄도 성큼 더 다가올 것이다. /엄다경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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