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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채찍’ 아틸라 ① 훈족 유럽을 유린하다

등록일 2025-02-24 18:59 게재일 2025-02-25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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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1세와 아틸라’(라파엘 作). 교황 레오 1세는 아틸라 로마 침략을 앞두고 그를 설득해 군사를 물리게 한다. 그림에서 보면 훈제국 군사들은 옷도 걸치지 않은 야만족으로 표현했다. /사진=Wikimedia

“전쟁의 신 아레스(Ares)의 검이 아틸라에게 주어지다”

앞선 ‘도미노게임 민족의 대이동’에 대해 살짝 간만 보고 넘긴 탓에 미련이 남아 역사를 거슬러 잠시 돌아가기로 한다.

4세기 중반, 카스피해 북쪽에 훈족이 나타났다. 이들의 생김은 흉노족을 똑 닮았고, 흉노와 발음도 비슷했다. 러시아에서 카스피해로 흐르는 볼가강을 사이에 두고 동쪽은 아시아, 서쪽은 유럽으로 나뉜다. 유럽인들 눈에는 흉포하게 생긴 사람들이 말을 휘몰아 괴성을 지르며 불쑥불쑥 나타나자 그야말로 공포에 질렸다. 이들은 그 옛날 중국 한나라에 밀려 서쪽으로, 서쪽으로 이동한 후 종적이 묘연해진 흉노의 후예들이었다.

훈족이 카스피해 북쪽에서 나타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한나라와 힘을 합친 남흉노에 패한 서흉노 잔존 세력은 고배의 쓴 잔을 삼키며 서진을 이어갔다. 따뜻한 바람이 불고, 넓은 평원이 펼쳐진 곳을 찾아 이동을 계속했다. 이들은 대략 2세기 동안 이동하면서 힘을 길렀다. 투르키스탄 서쪽 일대에 도착한 이들은 그동안 사라져가던 문화와 민족의 동질성을 어느 정도 회복하는 데 성공한다. 서진 과정에 여러 잡다한 주변의 종족들과 합병하거나 정복하면서 힘을 키웠다. 특히 서아시아와 동유럽에 살던 게르만족과도 피가 섞인다. 그러다 기후변화와 목축 등 그 장애가 나타나자 재차 서쪽으로 이동해 카스피해 북쪽에 자리 잡았던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훈족은 4세기 중반이 되면서 가장 먼저 볼가강과 돈강 유역에서 한가롭게 살아가던 ‘알란(Alan)’을 침략했다. 뒤이어 도나우강 동쪽, 즉 동유럽의 동고트를 정복한다. 서쪽으로 서진을 계속한 훈족은 지금의 우크라이나 남서부와 몰도바 북부를 흐르는 드네스트르강을 건너 서고트족마저 짓 뭉겨버린다. 이 소식은 바람처럼 전해지면서 전 유럽에 확산되고, 공포는 동쪽으로부터 밀려들고 있었다.

볼가강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아시아로 나뉜다. 중국 한무제에 의해 쫓겨난 흉노족의 후예 훈족이 200여 년이 흐른 4세기 중반 카스피해 북쪽에 나타나면서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기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시작된다.  /일러스트 박진서
볼가강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아시아로 나뉜다. 중국 한무제에 의해 쫓겨난 흉노족의 후예 훈족이 200여 년이 흐른 4세기 중반 카스피해 북쪽에 나타나면서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기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시작된다. /일러스트 박진서

게르만민족 대이동의 서막이 열리며 로마의 앞날에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훈족은 장장 80여 년간 유럽의 판도를 뒤흔들며 역사를 주물렀다. 375년은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시작된 해다. 즉 동고트족, 서고트족, 프랑크족, 반달족, 앵글족, 색슨족, 부르군트족, 유트족 등 유럽에 이동의 역사가 시작됨과 동시에 일대 피바람이 불면서 폭력과 약탈의 역사가 이어진다.

훈족은 오늘날 발칸반도의 루마니아 중서부 지역인 트란실바니아에 훈왕국을 세운다. 378년 봄, 훈 군대는 게르만족을 몰아내면서 서진을 이어갔다. 쫓겨난 게르만족들이 로마제국의 영토로 몰려들었다. 헝가리 티사 강변에 살고 있던, 나름 야만족이면서 용맹하다고 소문난 반달족이었지만, 훈 군사에 의해 서쪽으로 쫓겨 가면서 멀고도 먼 이베리아반도까지 이동해 그곳에 반달왕국을 세워 훗날 서로마 유린에 앞장서기도 한다.

당시 로마는 사실상 동서로 분열되어 갈등으로 치닫고 있었을 때였다. 395년 무렵, 로마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죽고 본격적으로 동·서 분열의 수순을 밟기 시작했던 로마에 훈족의 침략이라는 악재가 닥쳤다. 400년경이 되어서도 훈족의 원정은 멈추지 않았다. 이제부터 명실공히 훈왕국에 욕망의 상징 ‘제국’이란 이름을 붙인다. 트리키아 총독이 훈족과의 평화를 구걸하러 찾아왔을 때다. 훈제국의 황제 울드즈는 이렇게 말했다.

“태양이 뜨는 곳에서 태양이 지는 곳까지 우리의 영토로 만들 것이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폭력의 자만이 가득 찬 인간의 본능이 이어졌다. 그랬던 야망 덩어리, 훈제국의 걸출한 인물 울드즈가 410년에 죽었다. 그렇지만 유럽의 패권은 여전히 훈제국의 손에 있었다.

아레스가 파괴와 살상을 일삼고, 피를 보기를 즐기는 전쟁의 신이라는 점에서 아틸라를 그에 대입시켰다는 것은 그만큼 광폭한 존재로 여겼다는 뜻이다. 433년, 28세에 왕위에 등극한 아틸라는 거침없었다.

아틸라는 어린 시절부터 숙부 루아를 따라다니며 숱한 전쟁을 치렀으며, 각 도시의 지리와 통치방식까지 익혔다. 아틸라의 지도력 아래 이민족으로는 유럽 가장 깊은 곳까지 밀고 온 훈족을 사람들은 ‘신의 응징’으로 불렀다. 유럽 전역과 로마제국을 벌벌 떨게 만든 아틸라는 걸출한 지도력과 그를 따르는 부하들, 부족장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 등 단기간에 세계를 장악한 그의 능력은 탁월했다.

밀려드는 게르만족으로부터 굳건하게 걸어 잠그는데 성공한 비잔티움제국과는 달리, 서로마는 도미노처럼 일어나는 민족의 대이동에 의해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 서로마 영내를 마음대로 들락거리는 이민족은 약탈을 일삼으며 아비규환으로 만들었다. 침략에 노출된 농민들은 급기야 반란을 일으켰다. 당시 로마의 명장이자 서로마 총사령관이었던 아에티우스는 급하게 훈제국의 아틸라에게 SOS를 타전했고, 아틸라는 불감청고소원이라, 이에 응하면서 농민반란을 진압하였다. 유럽은 이제 아틸라의 공포에 숨을 죽여야 했다. 하지만 비잔티움제국의 테오도시우스 2세는 달랐다. (계속)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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