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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영호루

권영시 시민기자
등록일 2025-03-09 19:41 게재일 2025-03-1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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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의 ‘3대 루’로 명성 떨쳤지만<br/>수차례 유실로 본래 터 아닌 곳에<br/>콘크리트 구조로 새로이 지어져<br/>고려 공민왕의 숨결 살아 숨쉬는<br/>지역 문화유산 제대로 복원해야 
영호루 전면. 공간이 비탈지고 협소하여 정면 사진 촬영이 어렵다.

안동에 역사적 흔적이라면 먼저 영호루(映湖樓)를 들추고 싶다. 예로부터 진주 촉석루와 밀양 영남루와 함께 영남의 3대 루(樓)의 하나로 명성이 높았던 곳이다. 영호루 한자를 두고 그대로 풀이하면 호수(湖)에 비친(映) 누각이다.

영호루는 영남의 명물로 소문은 났지만 잦은 유실과 복원으로 창건 연대가 명확하지 않다. 고려시대 향토 출신 김방경 장군이 원종 15년(1274년)에 일본 원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영호루에서 지은 시를 보아 고려 중기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순조 20년(1820년) 안동부사 김학순이 영호루를 중수하고 114년째 되던 1934년 때 일이다. 여름 장마가 시작한 무렵인 7월 23일 낙동강 대홍수가 안동읍내 전체를 휩쓸게 된다. 이때 영호루는 완전히 휩쓸려 떠내려가고 빈터에는 주춧돌과 돌기둥 몇 개만 남게 된다.

한참이 지난후 떠내려갔던 현판만을 겨우 수습하여 전해 오다가 1970년에 와서야 영호루 중건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영호루는 본래의 터가 아닌 안동시 정하동 나직한 산마루에 세워진다. 건물은 철근콘크리트 한식 누각으로 중건하였다. 영호루가 1970년 중건하기까지 숱한 유실을 당한 아픈 역사를 감안하여 아마도 아예 홍수 걱정이 없는 지금의 산언저리에 세우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나라가 경제적으로 어렵던 시절이라 여러 가지 사정을 감안하여 그 당시에는 콘크리트 건물로 지어도 대만족이었다. 그러나 지금와서 보니 공간이 너무 협소하고 관광객들에게 내보이기는 너무 허술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다.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 경제대국 10위권에 들어 갈만큼 잘 사는 나라다. 옛날처럼 공사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만하지 않나. 지방자치단체마다 경쟁하듯 국가 유산을 복원하는 사례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참에 영호루도 이제는 본래 모습인 목조 건물로 그럴듯하게 중건하는 것이 여러모로 좋을 것 같아 제안을 해 본다.

낙동강변 옛 원래 자리가 마땅하겠지만 ‘영호루 유허비’가 세워진 곳도 다시 짓는 장소로 괜찮을 듯하다. 꼭히 옛날 자리가 아니라도 낙동강 가까이에 부지를 성토하여 복원하고 주변에는 미루나무를 빼곡하게 심게 된다면 옛날 정취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민왕이 군사 훈련을 관람하고 사냥을 즐기면서 배를 타고 유람을 즐겼듯이 이곳에서 역사를 되돌아 보고 우리의 조상들이 즐겼던 풍류에 젖어 본다면 관광지로서 멋지지 않을까 한다.

1970년 당시 누각을 중건하고 강쪽에 걸어 놓은 현판은 공민왕의 글씨다. 반대편 현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글씨가 있다. 누각 안에는 40여 한시 편액이 걸려 있다. /권영시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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