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무방수날 장담그기

등록일 2025-03-12 18:43 게재일 2025-03-13 18면
스크랩버튼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이정옥위덕대 명예교수

장담그기는 김장 문화와 함께 한국만의 독창적 문화로 2018년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됐고, 작년 2024년 12월 3일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콩을 발효해 먹는 문화권 안에서도 한국만의 독특한 장 제조법이기에 중국과 일본보다 먼저 등재되었다. 장담그기는 콩을 주재료로 메주를 만든 뒤 이를 발효시켜 된장과 간장 등을 만드는 전통적인 과정을 이르는 것으로, 한국 음식의 기본양념인 장을 만들고 관리·이용하는 과정의 지식과 신념·기술을 모두 포함한다.

‘장’은 한국인의 일상음식에 큰 비중을 차지해 왔으며, 가족 구성원이 함께 만들고 나누어 먹는 문화가 세대 간에 전승돼 왔다는 게 등재 사유였다.

우리나라의 장 문화는 거의 1년이 소요되는 그야말로 슬로푸드의 끝판왕이다. 초여름에 콩을 심고, 늦가을 서리가 내리기 전에 거두어 말린 뒤 입동 무렵에 메주를 쑨다.

콩을 불려 충분히 무르게 삶아 으깬다. 메주틀로 네모 반듯한 메주를 만들어 볏짚으로 묶어 두면 곰팡이균이 만들어지는데 겨우내 처마 끝에 매달아 바싹 말린다. 이월 좋은날을 가려 장담그기를 한다.

먼저 항아리를 깨끗이 씻어 물기를 말린 뒤 속에서 볏짚을 태워 살균소독한다. 메주를 씻어 말리고 소금물을 계량해 준비한다. 메주를 항아리에 담고 물을 붓고, 말린 고추와, 말린 대추, 옻나무, 숯을 적당히 넣고 가늘게 자른 대나무를 항아리 안에 걸쳐 떠오르는 메주를 눌러둔다. 볕 좋은 장독대에서 두세 달이 지나면 간장과 된장을 분리하는 장 가르기를 한다. 이렇게 두 가지 장을 만들고, 지난해에 사용하고 남은 씨간장에 새로운 장을 더하는 방식으로 이어져 내려와 오래 묵힐수록 좋다고 했다. 몇 백년 묵은 간장을 간직한 종가도 있다고 들었다.

작년 흰머리소녀 모임, 유복혜 선생님께서 ‘장은 무방수날에 담근다.’고 하셨다. 무방수날이란 단어를 처음 들었는데, 알고 보니 이월의 ‘손없는 날’이었다. 귀신이 날마다 동서남북 4방위로 다니며 사람의 활동을 방해하고 해코지를 하는데, 9와 0으로 끝나는 날짜에는 하늘로 가서 어디에도 없다고 믿었고 그날이 바로 ‘손없는 날’이다. 따라서 ‘손이 없는 날‘은 무슨 일을 하여도 탈이 없어 꺼리지 않아도 된다고 여겼고, 결혼, 이사, 개업 등 인간의 중요한 행사 날짜를 정하는 기준이 되었다. 그 중 특히 이월의 초아흐레와 열흘을 무방수날이라고 하는 거였다. 세시풍속사전에 의하면 특히 무방수날에 담근 장은 맛이 좋다고 했다.

지난 주말이 무방수날이었고 내 생애 첫 장담근 날이었다. 청도의 유복혜 선생님께서 미리 준비하신 소금으로 소금물을 만들어, 잘 소독하신 항아리에 메주를 넣고 붓는 참 짧은 공정만이었지만 첫 시도는 설레고 값졌다.

함께한 이솔희 선생님은 이 의미있는 행사를 유튜브에 올렸고, 같이 간 손녀는 일기에 적을 거라고 했다. 매일 햇볕을 가려 받는 유 선생님의 수고가 맛난 장을 만들어 낼 것이다. 석 달 뒤 장가르기를 위한 또 한 번의 청도나들이가 기대된다. 평생 여기저기서 된장을 얻어먹던 내가 어쩌면 올해부터는 된장을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정옥의 신황금기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