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서
떠돌던 바람이 늦은 저녁의 눈을 읽을 때면
수련 잎마다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고, 내 안의 가장 깊은 곳을
들여다보며, 저녁은 소리 내어 일러 주었다
다시 책을 읽는다
아득한 독서의 속도에 부딪혀 나는 까마득히 정신을 잃는다
어둠의 심장을 깊숙이 베어 물며 입술을 닦는 그대
나는 무수히 죽어나 살아난다
숲속에는 피 냄새가 진동해. 나뭇잎들이 수군거리며
숲의 낌새를 읽었다
읽다 빠져나온 책 속이 캄캄하다
우리는 세계의 무엇인가를 읽으며 살아간다. 그것은 세계가 알려주는 어떤 뜻과 자신의 마음을 겹쳐놓는다는 것이다. 위의 시의 시인은 ‘저녁의 눈’을 읽고는, “내 안의 가장 깊은 곳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 저녁에 그는 책을 읽고 있다. 존재를 빨아들일 만큼 강렬하게 읽히는 책을. 그 책을 숲에 비유한다면, 그 숲에는 “무수히 죽거나 살아”나는 ‘나’의 “피 냄새가 진동”할 것이다. 캄캄한 무(無) 위에 펼쳐진 숲.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