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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마주하다, 내 안의 숲-사유원

김순희 시민기자
등록일 2025-04-22 19:52 게재일 2025-04-23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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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알바로 시자가 설계한 소요헌은 건물이 사람을 위로한다는 걸 알게 해준다.

산 정상에 카페가 있다. 오르막길을 한참 걸었더니 땀이 나고 목이 말라 시원한 모과에이드를 주문했다. 멀리 팔공산이 눈에 들어오는 뷰가 포함된 가격이라 비싸도 이곳에서 재배한 모과라 향이 더 좋았다. 카페 건물의 이름은 가가빈빈이다.

풍류의 산수 사유원, 팔공산 지맥 70만㎡에 사람이 만든 자연의 정수가 펼쳐졌다. TC태창을 이끌었던 설립자가 평생 아꼈던 바위, 세월을 견딘 소사나무, 소나무, 배롱나무, 모과나무를 한자리에 옮겨왔다. 그리고 세계적인 건축가, 조경가, 예술가들도 불러 모아 생각하며 거닐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계곡과 능선을 따라 산책했다. 홈페이지에는 목련길, 백일홍길, 모과길, 고송길의 네 개의 코스를 마련해 뒀다. 오전 9시 문을 열어서 첫 손님으로 입장했다. 고요한 숲의 느낌을 오롯이 느끼고자 일찍 집을 나섰던 것이다. 예약자 이름을 말하니 목에 걸고 다니라며 일행 중 한 사람에게 GPS목걸이를 건넸다. 숲이 방대하니 혹시 길이라도 잃을까 배려하는 것이라 짐작했다. 한 손엔 지도를 받아 들고 치허문을 향해 올랐다.

목련길은 1시간 정도 소요되는 코스다. 치허문을 출발, 호젓한 비나리길을 따라 오르자 참꽃이 전성기를 지났는지 꽃잎을 떨구었다. 어린 시절 그 맛을 기억하려 친정엄마가 입에 넣고 씹는다. 쌉싸름하다고 웃으셨다. 제비꽃이 산길에 보라색 카펫을 깔았다. 울창한 리기다소나무숲으로 행했다. 자그마한 벽돌 건물이 있어서 뭐 하는 곳일까, 달팽이 모양을 빙글 돌아 들어가니 샤워기가 있었다. 산책 도중에 사용하라고 한다. 조금 걷다 보면 알바로 시자의 대표적 건축물인 소대가 비스듬히 섰다. 노출 콘크리트로 계단을 따라 오르니 머리 위 구석에 제비집이 보였다. 집 입구가 굴처럼 좁은 걸 보니 굴제비의 집이라고 친정엄마가 알려주었다. 산 아래 가정집에 세를 든 제비집과 달랐다. 소대는 전망이 좋은 곳이었다. 제비들도 그걸 알고 코너마다 몇 채나 자리 잡았다.

바로 근처에 소요헌이 보였다. 입구가 어디인지 가까이 갈 때까지 알기 어려웠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연상할 수 있는 조형물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오려는지 아니 오르려는지 헷갈린다. 조용한 숲에 우리 소리만 두런두런 조명도 과하지 않게 드리워 말소리도 저절로 소근거리게 했다. 알바로 시자가 쓰던 가구와 그림이 있는 방에서 통창으로 들어오는 소나무를 보며 잠시 땀을 식혔다. 가져온 물로 목도 축였다. 뭐라 설명하기 힘들지만, 그냥 마음이 좋았다. 소요헌에서 내려가는 길은 시자가 좋아하는 나무로 잘 알려진 목련이 일렬로 도열해 관람객을 반갑게 맞는다. 자목련은 아직 자태를 뽐낸다. 라일락도 향을 보탰다.

사유원이 만들어진 시초는 모과나무를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300년 넘은 고목을 일본으로 가져가려던 것을 웃돈을 주고 붙잡았다. 가장 나이가 많은 나무는 600살이 넘는다니 조선시대에서 현재까지의 시간을 저장한 역사다. ‘풍설기천년’이란 제목의 정원에 아름드리 모과나무가 가득하다. 수줍은 분홍빛 꽃이 피기 직전이었다.

산책로에 가끔 한자 문패가 달린 작은 건물이 있어 궁금해 들어갔다. ‘다불유시’와 ‘독락사’ 같은 한자였다.  화장실을 여러 표현으로 산책하는 이에게 웃음을 선물했다. 그렇게 오르니 지은 지 얼마 안 된 듯 정향대가 주위 나무들과 어우러지는 중이었다. 우리는 모든 건물 중에 이곳이 제일 좋다고 입을 모았다. 아직은 연둣빛의 봄이 제일 잘 내려다보이고, 솔솔 바람이 기둥과 기둥 사이로 지나다녔다. 그러고는 승효상 건축가의 작품인 명정에서 물소리 들으며 마음을 씻고, 물을 저장한 첨단에서 우리 집 방향이 어딘가 굽어보았다. 반가사유상처럼 숲을 향해 저절로 몸이 기울어졌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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