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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을 줄 아시죠?

장규열 고문
등록일 2025-04-23 19:34 게재일 2025-04-2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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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규열 고문

OECD가 ‘성인 인지능력(Survey of Adult Skills)’을 조사해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오늘날 어른들이 겪고 있는 인지능력의 변화가 흥미롭다. AI와 디지털의 변화가 눈부신 가운데, 세계적으로 문해력, 산술력과 문제해결능력 등이 전반적으로 하락하고 있으며 특히 한국인들의 문해력 저하는 더욱 두드러진다. 어찌된 일일까? 

문해력이 내려간다는 것은 단순히 글을 ‘읽을 줄 모른다’는 게 아니다. 표면적으로 읽고 새기는 능력은 유지되고 있지만, 이면의 의미를 이해하고 분석하여 문맥을 파악하며 내용을 자신의 사고로 끌어오는 능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글은 읽지만 생각하지 않는다. 정보는 접하지만 맥락은 사라진다. 기사는 보지만 분석은 하지 않는다.

문제는 역설적으로, 디지털 환경의 급격한 확산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스마트폰과 SNS를 중심으로 한 정보 소비는 빠르고 피상적이며 단편적이다. 이용자는 짧은 문장과 놀라운 이미지, 요약된 해설에 익숙해지고 스크롤과 클릭으로 반복되는 표면적 정보탐색에 길들여진다. 이런 정보환경은 장문의 글을 읽고 천천히 사유하는 능력을 약화시키고 결과적으로 문해력을 감퇴시킨다. 4월 23일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World Book and Copyright Day)’이었다. 책은 여전히 독해와 사유의 공간이며, 문해력의 가장 전통적이며 강력한 훈련 도구다. 독서는 정보를 받아들이는 행위이며 언어를 통해 구조화된 사고를 익히고 타인의 시선과 저작을 통해 자기 인식을 확장하는 행위다. 독서를 멀리하는 경향은 인간의 사고력과 공감능력을 점차 축소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한국 사회의 문해력 저하는 단지 교육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소통의 위기이며 민주적 판단력과 비판적 사고력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경고가 아닌가. 정책과 언론, 여론과 소통의 흐름이 점점 더 자극적이고 단선적이며 감정적인 방식으로 소비되고 있는 현상은 복합적 맥락을 해석하고 대응하는 능력의 약화를 드러낸다. 가짜뉴스를 솎아내고 의미 있는 콘텐츠를 선별하여 높은 수준의 지적 능력을 길러내는 일도 적적한 문해력이 기초를 잡아주어야 가능하다. 문해력은 개인의 삶을 위한 기술이면서 공동체의 건강성을 지탱하는 집단적 자산이다. 기술 발전이 인간의 지적 능력을 자동으로 향상시킨다는 믿음은 허구다. 오히려 문명을 유지하고 확장해왔던 기본적인 인지기술, 특히 문해력은 더욱 의식적으로 단련하고 보존해야 하는 영역이다. 아인슈타인은 ‘교육의 목적은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지, 사실을 암기하게 하는 게 아니다’라고 하였다. 인간이 장착해야 하는 도구로 생각하는 능력을 꼽은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자칫 느리고 비효율적인 듯 보이지만, 바로 그 ‘느림’은 곧 사유의 깊이와 너비를 의미한다. 세상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생각은 오히려 더 깊고 넓어져야 한다. 그것이 가능한 길은 여전히 책 안에 있다.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은 단지 책을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 사유하는 인간으로 남기 위한 최소한의 자각을 요구하는 날이다. 글을 읽을 뿐 아니라 독서를 통하여 시민의식을 높이고 시대정신을 꿰뚫는 지혜를 길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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