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세월 수성못 대표 명물 ‘왕버들’ 15m 높이 굽어진 줄기 하늘로 칫솟아 자연과 역사·문화 공간으로 감동 선사
대구 수성못 동쪽 산책길 입구에 우뚝 선 왕버들은 수성못과 함께 100년을 지켜온 살아있는 역사다.
연둣빛 새잎이 돋는 4월, 그 싱그러움은 “누가 4월을 잔인한 달이라 했는가?”라는 물음을 절로 떠오르게 한다. 이 왕버들은 수성못의 대표적인 명물이자, 못의 변천과 대구 시민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상징적 존재다.
왕버들은 버드나무과의 낙엽활엽교목으로, 우리나라 중부·남부 습지와 냇가에 자생하는 식물이다. 수성못의 왕버들은 15m가 넘는 키와 1m가 넘는 줄기 지름을 자랑한다. 비틀린 굵은 줄기와 사방으로 펼쳐진 가지는 세월의 흐름을 몸으로 기록한 듯하다. 나무가 썩을 때의 인(燐) 성분으로 인해 불빛이 나와 귀신 버들로 불리기도 했고, 그 신령스러운 자태는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이들의 위로와 전설을 낳았다.
수성못은 1925년 일제강점기, 일본인 미즈사키 린타로와 조선인 대지주들이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만든 인공 저수지다. 미즈사키 린타로는 평생을 수성못 관리에 몸을 바쳤고, 그의 유언에 따라 수성못이 보이는 법이산 산자락에 그의 묘소가 있다.
이 못과 함께한 왕버들은 그 모든 변화를 묵묵히 지켜보며, 자연과 인간,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공간의 상징이 되었다. 수성못은 대구시민의 대표 유원지로, 벚꽃이 흐드러진 봄날이면 산책로를 따라 많은 인파가 몰려와 추억을 쌓는다. 왕버들은 그 곁에서 세월의 무게를 견디며, 변함없는 푸르름으로 시민에게 쉼과 위로를 제공한다.
또한 한국관광 100선에 두 차례 선정된 수성못의 명성에 왕버들도 한몫했다. 대구 문인 방종현 수필가는 수성못의 대표 명소로 수성못 8경(景)을 소개한 바 있다.
1경은 지중고도(池中孤島) 수성못 둥지섬, 2경은 구압선유(龜鴨船遊) 거북선과 오리배, 3경은 화류춘앵(花柳春櫻) 벚꽃장, 4경은 야경분수(夜景噴水) 수성호반 야경분수, 5경으로는 연리지목(連理枝木) 부부사랑 연리지나무, 6경은 난간시건(欄干施鍵) 사랑약속 자물쇠, 7경 상화시비(尙火詩碑) 이상화 우국시비, 8경 왕양노수(王楊老樹) 100년 노거수 왕버들을 들었다. 여덟 번째 경관으로 선정된 것이 바로 ‘왕양노수(王楊老樹)’가 100년 노거수 왕버들이다.
이 노거수는 일제강점기 나라 잃은 울분을 삭이느라 수성못을 산책한 상화 시인을 위로하기도 했다.
100년의 노거수는 단순한 수목을 넘어, 대구의 역사와 시민의 삶, 그리고 자연의 경이로움을 품은 존재다. 삶과 죽음, 기억과 망각이 교차하는 도시의 한복판에서, 왕버들은 이 순간에도 고요한 생명력을 뿜어낸다.
100년의 세월을 견디며 굽어진 줄기, 바람에 흔들리는 잎 하나하나에는 시대의 숨결이 서려 있다. 오늘도 수성못의 왕버들은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수성못을 찾는 이들에게 깊은 울림과 감동을 전한다. /김윤숙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