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덕스럽다고들 하지만, 봄날은 분명 매혹적인 구석이 많다. 큰 일교차로 마음에 드는 옷을 갖춰 입기도 어렵고, 느닷없이 불어닥치는 바람으로 정신 사나운 경우도 왕왕 생긴다. 하지만 얼굴을 스치며 지나가는 산들바람 속에서 한겨울 삭풍(朔風)에 담긴 칼날은 이미 찾을 수 없다. 겨우내 굽었던 등줄기와 목덜미에 자연 힘이 들어가니 걸음걸이 또한 발라진다.
밀린 숙제처럼 텃밭에 심을 모종을 사러 나간다. 청상추, 청양고추, 오이고추, 방울토마토, 가지, 오이, 수박, 참외, 옥수수 어린 모종을 한 바구니 담아와 따사로운 햇살 아래 정성껏 심는다. 작년엔 이상기온 때문에 텃밭 가꾸기에 실패를 보았다. 오직 가지 하나만 늦가을 올 때까지 줄기차게 자라나 작은 즐거움을 선사했을 뿐이다.
앞으로 한 달 지나면 텃밭에서 이것저것 거둘 채소가 마당의 초목을 응시할 것이다. 물론 그런 유쾌함을 맛보려면 부지런히 물을 주고, 불원초(不願草)를 뽑아내고, 벌레를 잡아야 한다. 인간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기에, 정성을 다해야 소량의 수확이나마 기대할 수 있다. 모종을 심고 나서 민들레와 달래, 참죽나물을 건사한다. 자연이 주는 선물이다.
이른 저녁을 마치고 들로 나간다. 사납게 짖어대는 개들을 우회하는 산책로를 선택한다. 지나가는 사람을 향해 마구잡이로 울부짖는 개를 보노라면 낙후(落後)하고 시대착오적인 언사를 배설하는 일부 정치인이 떠오른다. 시대를 앞서가지는 못할망정 20세기 개발독재 망령에 사로잡혀 구태(舊態)를 반복하는 정치인들은 우리 역사를 질식시키는 맹독(猛毒)이 아닐 수 없다.
많은 촌길이 아스팔트나 시멘트로 덮여 있기에 예전의 논길이나 밭길을 상상한다면 당혹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그 길에도 무릎까지 자라난 지칭개와 황새냉이가 병사처럼 우뚝하고, 바람결에 흔들리는 밀과 보리가 길손을 반긴다. 화양(華陽) 들판에는 켄 로치(1936-) 감독의 영화에 나오는 보리 대신 어른 만큼이나 키가 자란 밀이 떼 지어 온몸을 우줄대고 있다.
늦은 시각 귀로(歸路)에 오른 오리나 왜가리가 어두운 대기 속을 홀로 날아가며 우짖는 소리는 적이 쓸쓸하다. 다섯 마리 오리가 대열을 이루고 서로 자리를 바꿔 가며 날아가는 풍경과 사뭇 대조적이다. 사람뿐 아니라, 짐승도 무리 지어 살아가는 편이 그나마 덜 외롭고 힘든 것이다. 아차 하는 사이, 고라니 어린 녀석이 내 앞을 지나 밀밭 속으로 뛰어든다.
서녘의 불그스레한 빛이 서서히 잿빛으로 바뀌고, 창공에는 흰색 동체(胴體)의 비행기가 아득한 높이에서 날고 있다.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나서, 혹여 있을 올여름 나의 장도(長途)를 잠시 생각한다. 오고 감은 인생길에서 필연의 과제이되, 거기서 만나고 헤어지는 인연의 색깔과 향기는 또 얼마나 다채롭고 상큼하며 통절(痛切)한 것인가?!
분망했던 일과를 돌이키며 걷노라니 어둑한 골목길 끝에 동그마니 자리한 누옥(陋屋)이 나를 반긴다. 10년도 넘는 세월 한결같이 제 자리를 지키고 서서 오가는 세월과 여여(如如)한 인생을 반추하는 집이라니! 기특하고 고마운 상념이 멀리서 찾아온다. 삶은 위대한 축복이다!